
"누구누구는 여우야"라고 할 때 여우짓이 눈에 빤히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게 얄미운 사람이 있다. 반면 빤히 여우짓을 하는데 밉지 않은 사람이 있다. 거기에 진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임창정은 후자다. 인터뷰를 일절 않겠다던 그가 최근 오픈한 오리고기집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한 것은 분명 가게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밉지 않다.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으면서 예의 천연덕스런 얼굴로 슬렁슬렁 이야기하는 모습은 10여년간 방송과 영화를 통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임창정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또 솔직한, 그런 임창정이기에 그의 가게에는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찾았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손님을 맞아서 인사하고 전화로 예약을 받는 그의 모습은 능청스러우면서도 당당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1번가의 기적'(감독 윤제균ㆍ제작 두사부필름)에서도 임창정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재개발을 위해 달동네 주민들을 내쫓으려 온 껄렁껄렁한 건달이지만 그 일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아이들을 때리면서도 결국 끌어안고야 마는, 천상 임창정이다.
"오리고기집이 잘되면 좋겠냐, 아니면 '1번가의 기적'이 잘되면 좋겠냐"고 짖굿게 물었다. 임창정은 못들었다는 듯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둘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입에 바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럼 왜 오리고기집을 하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처음 들었다는 듯이 "원래 오리고기를 좋아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역시 여우다.
'1번가의 기적'은 사실 처음부터 임창정에게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색즉시공'으로 임창정과 인연을 맺었던 윤제균 감독은 임창정을 통해 류승범에게 먼저 제의했다. 하지만 류승범이 그 때 비슷한 캐릭터를 먼저 연기했던 터라 또 다시 비슷한 캐릭터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거절하자 윤제균 감독과 임창정은 서로 누구를 해야지라며 머리를 맞댔다.
사실 그 때 임창정은 윤제균 감독이 자신을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미안해서 이야기를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죠?"라고 먼저 임제균 감독에게 말했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도 진행됐다.
다른 배우라면 "시나리오가 좋고 감독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라고 판에 박힌 답을 하지만 임창정은 달랐다. 이런 이야기를 술술 털어 놓는다. 역시 솔직하다.
'1번가의 기적'에서 임창정은 더많이 웃길 수 있었다. 현장에서 아이디어도 쏟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제했다. 윤제균 감독이 자제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낭만자객' 이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유리구슬 안에 가두고 지켜보는 것 같았다는 임제균 감독이 진정성을 가지고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두말없이 따라갔다.
그리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두 손 들었다"며 윤제균 감독에게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같은 장면도 내가 연기를 잘한 것은 편집하고 못한 것을 골라서 붙이기도 했더라. 하지만 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체로 볼 때 그게 필요했던 것이고 결국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었으니."

누군가는 임창정에게 왜 늘 연기가 똑같냐고 지적한다. 약하거나 어리어리하거나 뺀질뺀질한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냐고. 하지만 임창정은 "나는 변할 수도 변하지도 못한다"고 손사레를 쳤다.
변신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다. 다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상황이 오버라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임창정은 "4, 50대가 되어서 사람들이 '아, 임창정이 저런 연기도 할 수 있구나'라고 하게 되면 그게 연기 변신을 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임창정은 배우 주현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매 장면 장면은 내가 너보다 못하지만 전체는 꼭 그렇지 않다. 전체를 보고 그 속에 임창정이 나오지 말게 하라"는 조언이었다. 처음에는 꼭 그런 것은 아닌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누가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겠냐"면서 껄껄 웃었다.
임창정은 다재다능하다. 10집 앨범 가수이며 콩트를 했고 뮤지컬도 했다. 사업도 해봤고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40살이 넘으면 대학을 졸업해 감독을 해볼 계획도 있다.
여러 재능을 하나에만 쏟았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임창정은 결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썰미가 좋아서 모든지 쉽게 쉽게 한다. 하지만 노래와 연기를 제외하고는 이내 질려버린다"는 그는 "그게 내 성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이 중요하지 흥행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배우들과는 달리 "흥행에 엄청 집착한다"고 말하는 임창정. 그는 '1번가의 기적'이 '색즉시공'보다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임창정은 "올해 3편의 영화가 이미 결정됐다. 아마도 두사부필름과 일을 하게 될 것 같다"면서 영화 제목을 술술 털어놨다. 그러자 곁에 있던 두사부필름 관계자가 얼굴이 빨개지며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캐스팅 기사가 미리 나가면 마케팅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알면서 이야기한 것이다.
역시 임창정은 솔직한 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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