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원은 신중한 배우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연기를 할 때도, 많은 것을 고려하고 진행한다. 인터뷰를 할 때도 질문을 받으면 1분 가량 곰곰히 생각한 뒤 답을 내놓는다.
그동안 하지원은 '다모' '발리에서 생긴 일' '황진이' 같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것만큼 영화를 통해서는 진정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묻자 하지원은 한창 동안 생각하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나를 끌어 낸다는 통쾌함을 덜 느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원은 "매 작품마다 액션 연기를 배우고, 춤을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권투까지 배우는 '몸 연기' 전문에 그동안 적잖은 칭찬을 받았지만 감성 연기에 목이 마르다"고 말했다.
권투를 배우다 코가 삐틀어질 만큼 혼이 났던 영화 '1번가의 기적'(감독 윤제균ㆍ제작 두사부필름) 개봉(15일)을 앞둔 하지원과 만났다.
-지난해 '황진이'로 KBS '연기대상'을 탔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기대도 안했고, 사실 최우수상에 욕심이 있었다. 연기하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1번가의 기적'은 드라마 '황진이'와 함께 한창 정신적으로 힘들 때 결정한 작품이다.
▶진정성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을 때 '1번가의 기적'을 만났다. '발리에서 생긴 일'과는 아버지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달랐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주로 가진 것 없고 힘든 상황에 처한 역을 많이 한다.
▶이런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지만 TV 드라마의 경우 그런 부분이 작품 선택의 원인 중 하나이다. 여자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 싶다. 내가 TV 속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동년배 여성들이 박수를 칠 수 있는 그런 작품. 누구나 예쁘고 다 잘나면 '왕재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는 그런 여자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영화 속 하지원과 TV 속 하지원은 좀 다르다.
▶(한참을 고민하다)영화를 할 때 연기에 대한 통쾌함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영화로 시작했지만 드라마로 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 속에서 내 모습이 전형화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 가지를 다 가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1번가의 기적'도 다른 작품들처럼 몸을 쓰는 영화이다. 이번에는 권투다.
▶여배우로서 몸을 쓰는 연기를 한다는 게 좋다. 나중에 하지원이 '몸 연기' 전문 배우라고 특화되면 뿌듯하지 않겠나.(웃음) 몸을 덜쓰면 아프다. 물론 멜로라는 장르를 하고 싶다. 하지만 도전하는 데 조심스럽기도 하다.
27살이 되면 사랑을 다 알아서 사랑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8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잘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어린 시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 TV에서의 멜로 연기는 거짓인가, 영화에서만 멜로 장르에 도전하겠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TV는 반응이 빠르니 멜로 연기에 대해서도 가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쉽지 않다. 정말 베드신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 예전에 '편지'를 보고 극장에서 나왔을 때 마침 비가 내렸다. 내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작품을 꼭 하고 싶다.
-코 뼈가 휘어질 정도로 '1번가의 기적'에 매진했는데.
▶권투는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내 몸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하면 몸에서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첫 날 스파링을 할 때는 너무 힘들어 울었다. 이 영화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VIP 시사회 때 '주먹이 운다'에 촬영했던 류승범이 '많이 아팠죠'라고 묻더라.
-임창정을 '색즉시공'에 이어 또 만났는데.
▶결혼하더니 사람이 많이 바뀐 것 같더라.(웃음) 이렇게 자상했었나. 현장에서 둘이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냈다. 감독님이 너무 들뜨지 않도록 자제를 많이 시켰다.
-다양한 배역에 도전을 한다. 욕심이 많은 배우인가.
▶돈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도 없다. 돈에 끌려가기도 싫고, 돈 때문에 자존심을 팔기도 싫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뿐이다. 나중에 자식을 낳아도 공돈은 주지 않을 생각이다.
성공에 대해서라면 아직도 배가 고프다. 어느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배우가 아니라 안성기 선배처럼 40, 50이 넘어서 진정한 배우로 평가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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