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흔히 남성들이 즐겨본다는 편견이 있다. 시사적이거나 무거운 사회문제를 주제로 할 뿐만 아니라 주로 남성패널과 남성 진행자에 의해 진행되는 토론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 하지만 이런 가운데 여성을 앞세운 토론프로그램이 있다. MBC에서 방송되는 국내 최초 여성 토론프로그램인 '여성토론 위드'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을 중심으로 세워 다양한 여성 관련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을 펼친다.
'여성토론 위드'의 진행을 맡아 5개월 여간 토론을 이끌어온 오승연 고려대학교 주임교수를 만났다. 지난 12일 다문화가정 여성을 주제로 생방송 토론을 진행한 오 교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더불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여성 토론프로그램 진행자.."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만드는 것"
지난 2000년 SBS 공채 8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오승연 교수는 1년도 지나지 않은 그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모교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응용언어학을 전공하며 공부만 하던 오 교수가 다시 방송에 나온 것은 여성을 위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여성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토론 위드'(이하 '위드')는 국내 최초의 여성 토론프로그램이에요. 그동안 토론이라는 것은 대부분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는데 이런 편견을 깬 거죠. 시청자들도 이런 부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제 '위드'에서는 미혼모, 다이어트, 무상보육, 성범죄 등 여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로 각 분야의 전문가와 진행을 해서 여성들의 시각에서 다양한 문제를 살펴봐요."
여성과 관련된 주제로 토론을 하다 보니 페미니스트가 아닌가라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여자만의 토론 프로그램'이라는 기치 아래 성평등 의식 등을 다루다보나 특히 그런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오 교수는 토론이라는 것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뒤편에 숨겨진 일들에 대한 여론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확실히 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록, 또 여성 문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것은 여자들이 '설치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모습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만들자는 것이죠. 사회 깊숙이 숨겨져 있는 문제를 들춰내고 제도권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품자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권익향상에 있어서 메카가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가족이 우선인 대한민국 여자.."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리는 녹록치 않다. 한 주제를 이끌어 나가며 여러 주장들을 듣고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알아야 한다. 이에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본인만의 기술이 뭐냐고 묻자 오 교수는 간단하게 답했다. 바로 '공부'
"공부하는 건 귀찮죠. 그런데 문제를 알게 되면 될 수록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서 남편과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 많아졌어요.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그냥 쓰여 있는 대본을 읽는 것과는 다르거든요. 진행자가 공부를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토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생방송 토론이다 보니 이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상상하고 준비해야 되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다 보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프로그램에 집중하다보니 아이와 못 놀아줘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요."
대학교 교수이자, 국내 최초 여성토론프로그램의 진행자인 그도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이고 엄마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여성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똑똑하거나 말을 잘한다는 것에 앞서 여성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여성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격 1순위일 테니.
"제가 엄마가 되고 또 아이를 키우기 전을 생각해보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그런데 저는 그때도 지금도 가정이 기본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되 거기에만 만족하지 말고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꿈을 다시 찾아서 준비하면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내가 행복하면 내 가족과 아이도 행복하거든요."

◆꿈을 위해 아나운서 포기.."나만의 콘텐츠로 새로운 꿈꾼다"
지난 2000년, 여성들의 워너비 직업인 아나운서라는 직함을 1년도 안 되서 과감히 버린 오승연 교수는 사실 방송에 대한 미련을 접었었다고 쑥스럽게 털어놨다. 방송국이란 곳을 스스로 나온 이상 방송가를 기웃거리거나 부러워하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이 시험 준비하고 입사했던 아나운서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엄청난 유명인이 된 것을 보고 부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나운서를 그만 둔 내 선택을 스스로가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죠. 아나운서 동료들이 승승장구 할 때 저는 도서관에서 썩고(?) 있었거든요.(웃음) 도서관에 제 전용자리가 있을 만큼 정말 공부만 했어요. 그런데 사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래도 최대한 미련 없이 즐겁게 공부하려고 노력했죠."
그렇다면 왜 아나운서를 그만뒀냐는 질문에 오 교수는 저널리스트를 꿈꾸고 아나운서가 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변에서도 아나운서를 해보라는 제안을 계속 받았고 본인도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2000년 당시 한창 아나운서 예능인 만들기에 한창인 방송국에서는 그런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은 한 구석에 접어둬야 했다는 것.
"아나운서가 됐는데 예능국으로 보내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안 갔어요. 신입 아나운서가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웃음). 대학교 때부터 언론고시 준비해서 언론사 시험을 치다가 SBS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저는 꼭 언론인이 되고 싶었어요. 회사에서는 여러 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해보라고 했지만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주관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모교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다시 방송으로 돌아온 오승연 교수는 방송을 하다 보니 또 새로운 꿈이 생긴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젊었을 때의 섹시함과 미모가 아니라 나만의 콘텐츠를 찾아야 하는 것이죠. 제가 아나운서로서 방송만 했을 때와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난 후의 토론 진행은 다를 수 있거든요. 그게 저의 습관이고 저력이죠. 제가 공부하고 배운 분야로 늘 나와의 싸움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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