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능이 교양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과거라면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룰 만한 소재와 방식을 예능 프로그램에 접목한 프로그램들이 다수 눈에 띈다. 설 전후해 방송됐거나 방송을 앞두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연하다.
지난 10일 방송돼 호평을 얻은 MBC '남자가 혼자 살 때'는 혼자 사는 남자들의 삶을 밀착해 선보이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참신한 기획이었다. 이성재 김태원 노홍철 김광규 서인국 데프콘 등 배우와 가수들이 중심이었지만, 우리나라 전체 가구 4분의1에 달한다는 1인 가구를 예능의 틀에서 조명해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밀착 카메라로 다큐멘터리적 요소도 가미했다. 6.3%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선전한 '남자가 혼자 살 때'는 방송 이후 정규편성 요청이 빗발쳤다.
11일 방송된 MBC '내 영혼의 밥상'은 요리와 예능을 접목시켰다. 이경규 이수근 노홍철 강소라 등 4명의 MC들은 멀리 제주도를 찾아가 노년의 어머니가 타지에 사는 딸을 그리며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들고 그 주인공을 만났다. MC들도 직접 배를 타고 요리 과정을 지켜봤으며, 앞다퉈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했다. 7년만에 보는 고향 음식에 입맛을 다시다가도 그리운 어머니 생각에 울컥해하는 딸의 모습에는 시청자들도 목이 메었다. '내 영혼의 밥상' 역시 7.3%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5일에는 SBS 파일럿 '행진, 친구들의 이야기'가 방송된다. 지난해 개봉했던 하정우의 '577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행진'은 이선균과 그의 친구들이 나선 강원도 철원부터 양양까지 151km 국토 대장정을 담는다. 유해진, 오정세, 정은채, 김흥수, 장미란 등 예능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총출동해 6박7일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현재 예고편만이 공개된 상황이지만 깨알같은 웃음과 감동이 담겼다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세 프로그램 모두 출연진이 연예인일 뿐 독신자, 요리, 여행 등 교양에서 즐겨 다루던 테마를 예능에 접목시켜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잡겠다는 제작진의 야심이 읽힌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방식, 주부 시청자들에게 인기있는 아침방송이나 '6시 내고향'식 포맷을 거리낌없이 적용했다. 신변잡기 토크쇼나 우스꽝스러운 몸개그의 빵 터지는 한방이 없어도 충분히 예능다운 프로그램이었다는 게 방송을 본 이들의 평가다.
교양과 예능의 만남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로가 재미있는 교양, 의미있는 예능을 추구하면서 이미 그 경계가 꽤 흐릿해졌다. 예능 다큐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딱딱하기만 한 교양 프로그램,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문 예능 프로그램이 정체하는 가운데 이미 수년 전부터 변화가 이어져 왔다. 엇비슷한 예능이 반복되는 가운데 교양과의 접목은 프로그램에 개성을 불어넣기도 한다.
'무릎팍도사'에서는 안철수, 황석영, 엄홍길, 양준혁 등 비(非) 연예인 게스트들이 큰 화제를 모았고, 지상파 대표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SBS '짝'은 알고보면 예능 짝짓기 프로그램을 일반인 버전으로 비틀어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한 시사교양국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SBS '정글의 법칙'은 오지 탐험기, 생존기를 예능과 버무렸다.
최근 정규 편성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짙은 교양의 색을 발견할 수 있다. 강호동의 KBS 복귀 프로그램인 2TV의 '달빛 프린스'는 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토크쇼다. '붕어빵'과 '1박2일'의 짬뽕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MBC '일밤'의 '아빠 어디가'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가족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파일럿으로 방송된 SBS '땡큐'는 야구선수 박찬호와 혜민스님, 차인표라는 예능인지 교양인지 분간 안 가는 조합과 저마다의 철학이 묻어나는 토크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그저 즐거운 예능도 중요하지만 재미 가운데서도 의미를 찾고 정보나 교훈을 얻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수요도 그에 못지않다"며 "뻔한 예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바탕과 고민 속에서 교양 같은 예능이 나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한 예능 PD는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흐려진 지 오래"라며 "저마다 본령을 잃지 않는 가운데서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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