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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선희' 바쿠스와 뮤즈가 치킨에 소주를 먹다

'우리선희' 바쿠스와 뮤즈가 치킨에 소주를 먹다

발행 : 2013.09.05 09:30

전형화 기자
사진


홍상수 감독의 15번째 장편영화 '우리선희'가 도착했다. 술상영화다. 술을 부른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7차는 달린 것 같다. 홍상수 영화는 더 깊게 파 들어간 모양이다.


'우리선희'는 선희(정유미)라는 영화과 학생이 외국으로 유학가기 위해 추천서를 받으려 교수(김상중)를 찾아가고, 한 때 연인이었던 친구(이선균)를 만나고, 은밀한 관계가 있었던 영화감독 선배(정재영)를 차례로 만나 술을 마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세 남자가 선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선희'는 홍상수 감독 영화 중 드물게 형식미가 분명하다. 장소와 공간과 사람으로 삶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던 홍상수표 영화는 그대로지만 '우리선희'는 장소로 이야기를 나누돼 다른 이야기를 같아 보이게 만든다.


그 장소는 술집이며, 술상이다. 술상을 놓고 두 남자 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술자리지만 똑같은 술상 앞에서 교수가 한 이야기를, 연인이었던 남자가 하고, 선배가 한다. 선희를 앞에 두고 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나누기도 한다. "더 깊게 파서 너를 찾아라"


홍상수 감독은 이 술상 앞에 13분 동안 카메라를 가만히 놓고 배우들이 어찌 이야기하는지 관객이 지켜보게 만든다. 홍상수 감독은 술자리마다 롱테이크로 길고 길게 잡았다. 술상 자리마다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른 최은진의 '고향'이란 노래로 갈무리된다.


홍상수 감독은 술상마다 길게 찍고, 자리마다 '고향'으로 마무리하면서 누군가에게 건넨 말들이 어떻게 돌고 도는지 지켜보게 만든다. 홍상수 감독의 여느 작품들이 수필 같다면 '우리선희'는 시에 가깝다. 각운이 딱딱 맞아 떨어지면서 전체가 하나를 이야기한다. 어느 샌가 홍상수 영화는 점점 더 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의 영화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술을 마시는 남자들은 한 여자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선희는 착하고, 골통 같고, 예쁘다고. 사람 보는 건 다 비슷하다지만 "더 깊게 파서 너를 찾으라"는 말처럼 누군가에 대한 생각도 돌고 도는 게 아닐까.


여하둥둥 세 남자는 선희를 만나 "더 깊게 파서 너를 찾으라"는 말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게 된다. 천생 교수님이던 김상중은 심장이 아려오는 걸 느끼고, 마누라를 피해 나왔든지 후배 애인과 뭔 일이 있어 미안해서 나왔든지 그냥 골방에서 시들어가던 영화감독 정재영은 골방에서 나와 술을 마시게 됐다. 이제 영화 하나 갓 만들고 여전히 옛 여자를 못 잊어하던 남자 이선균은 사랑을 되찾으려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술의 신 바쿠스가 예술가에 영감을 주는 뮤즈를 만났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뮤즈 덕에 자신을 깊게 보게 되고, 뭔가를 찾으려 움직이게 됐다. 영화 마지막 선희가 떠난 뒤 세 남자가 나란히 고궁을 돌아보는 장면은 그래서 아름답다.


뮤즈에게 영감을 얻으려면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영화 첫 장면에 선희에게 거짓말을 한 이민우는 바보 취급을 받고 사라진다. 그는 술자리에 결코 초대받지 못한다. 제목은 '우리선희'지만 이 영화는 선희라는 뮤즈에게 축복 받은 세 술꾼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선희는 아름답고, 세 술꾼들은 취해야 했다.


롱테이크가 이어지니 배우들의 연기가 불을 뿜는다. 정유미는 홍상수 표현대로 예쁘고, 정재영과 이선균의 길고 긴 술상장면은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김상중은 등장만으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간 교수로 출연했던 이들과는 또 다르다.


1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보면 치킨에 소주가 무지 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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