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조덕제가 영화 촬영 중 상대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피해 여배우 B씨가 입장을 표명했다.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빌딩 조영래홀에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을 끝까지 고심했던 피해 여배우 B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는 대신 직접 작성한 편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는 이 글에서 "이번 기자회견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를, 나아가 영화계의 관행 등으로 포장된 각종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인정된 피고인의 죄명은 강제추행과 무고다. 피고인은 제가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후 저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및 무고로 형사고소를 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의 행위가 무고라고 판단, 기소했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며 "피해자인 저를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은 허위사실에 기반한 것이며, 이와 관련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임을 밝힌다"고 짚었다.
피해자는 "저는 경력 15년이 넘는 연기자다. 연기와 현실을 혼돈할 만큼 미숙하지 않다. 돌발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당시 성추행을 당하자 패닉상태가 되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성폭력 피해자들이 왜 고소를 망설이는지, 침묵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지 알았다"고 전했다.
앞서 배우 조덕제는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상호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여배우 B씨의 몸을 더듬고 찰과상을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으나 지난 13일 2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조덕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그간 '성추행 남배우 A씨'로 알려졌던 조덕제는 이에 지난 17일 실명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연기경력 20년 이상의 피고인은 동의 없이 폭력을 저지르고 제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추행을 했다"면서 "피고인은 저와 합의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가 합의되지 않는 연기를 했다. 영화계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묵인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저는 피고인을 무고할 어떤 이유도 없다. 연기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연기 활동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연인과 가족과도 원만히 생활했다. 그런 제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 넘는 법정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고작 기분 따위가 연기자로서의 경력, 강사로서의 명예, 지키고 싶은 사생활보다 중요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피해자임에도 매장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는 신고했다. 만약 피고인이 제게 밝혔던 것처럼 진심으로 사과하고 하차를 진행했다면 굳이 지난한 사법 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며 "피고인은 돌연 하차 의사를 번복하고 추가적인 가해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선배인 피고인의 가해 행위에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의 압박이 더해지자 저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B씨는 "보복이 두려워 소극적으로 재판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4월 피해자로서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로부터 8개월 넘어 사건이 마무리됐다"며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이 난 1심 결과를 언급했다. 그는 "허위 기사로 인한 추가 피해까지 이어졌고 저는 무너졌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고 처음부터 사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빠짐없이 항소심에 참석하고 피해 사실을 알리며 싸워나갔다"고 전했다.
피해자 B씨는 지난 13일 가해자의 유죄를 인정한 2심 판결에 대해 "30개월만에 같음을 인정받고 다름을 이해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였음이 연기 활동에 해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저는 성폭력 피해를 입고 삭제되는 쫓겨나는 환경에서 저는 희망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고 연대하려 한다. 억울하고 분하며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숨을 고르며 말하기를 시작하겠다. 시원하지는 않아도 차분히 제가 할 수 있는 말부터 시작하겠다. 첫 마디를 시작하겠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한편 사건 대책위 관계자는 "피해자가 오늘 새벽까지도 진실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수정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할 생각도 했지만,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피해자의 신상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편지를 대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책위 측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을 환영한다며 "영화 촬영 과정에서의 성폭력 사안에 대한 최초의 판례"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판결과 관련 "사전 합의 속에서 영화 촬영이 이뤄지는 것이 상식이며, 합의되지 않은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최근 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형벌을 면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무고하는 보복성 욕고소 행위에 대한 일침"이라고 분석했다.
대책위는 "흥행과 작품성에 치중하며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사실적인 연기를 유도한다는 미명 하에 상대 여자배우 모르게 남자배우에게만 연출지도를 하고 그럴듯한 화면을 위해 실제 위험으로 내모는 일이 자행돼 왔다"며 "남배우A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계기가 돼 영화를 위해선 뭐든 용인될 수 있다는 생각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 온 폭력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를 만드는 상식 또한 삶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향후에도 남배우A사건 공동대책위 참여 단체들은 남배우A 사건에 그치지 않고 영화계 성폭력 사건이 사라지고 성평등한 현장이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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