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자유다"
역사물을 다룰 때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설강화'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인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snowdrop'(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이하 '설강화')가 제작 단계부터 방영 중인 지금까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첫 시작은 '설강화'의 시놉시스였다. 지난 3월 알려진 '설강화' 시놉시스에는 남파 간첩과 민주화 운동하는 대학생의 로맨스를 그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역사왜곡 논란으로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도마에 올랐기에, '설강화' 역시 간첩 미화 혹은 역사왜곡이 담겨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JTBC 측은 "'설강화'의 극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군부정권 시절의 대선 정국"이라며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설강화'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여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거듭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시청자들의 불쾌감은 여전했다. 직접적으로 '설강화' 시청자 게시판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건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민원을 접수했으며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 측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니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 "현대사로 올수록 역사의 중요성 커져"

과연 '설강화'의 어떤 부분이 역사왜곡 논란을 만들어냈을까. 1987년, 남파공작원(남한에 파견된 공작원, 이하 간첩) 임수호(정해인 분)는 안기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은영로(지수 분)를 붙잡았다. 은영로는 운동하다 잡혀간 오빠를 생각해 그를 숨겨줬다. 또 피투성이가 된 은수호가 도망치는 가운데 운동권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당시 배경 음악으로 민중 가요 '솔아 솔아 푸른솔아'가 등장했다. 이후 기숙사 학생들의 도움으로 안기부를 따돌린 임수호는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안기부는 간첩인 임수호만 쫓았고 기숙사를 수색하기 위해 수색영장을 가져왔다. 또 안기부장은 인질극에 당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 회사 직원은 직원 목숨보다 국민 목숨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나열된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 후, '설강화'는 제작진들의 해명따라 임수호와 은영로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어간다. 언뜻 보면 제작진의 말처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의미를 폄훼한 내용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본다면 분명히 불편한 부분은 있다. 이는 주인공들의 청춘 로맨스를 그려내기 위해 1987년을 단순 배경으로 소비했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드라마 내 삽입된 '솔아 솔아 푸른솔아'란 곡은 민주화 운동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곡은 1986년 연세대 학생이었던 안치환이 동아리 선배 안종호의 투옥을 보며 지은 노래로,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 유세장에서 처음 불려졌다. 그해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조치와 함께 합법적 활동을 하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고정 레퍼토리가 됐다. '솔아 솔아 푸른솔아'는 일반 대중에게도 사랑 받은 곡이라곤 하지만 근간엔 민주화 운동이 숨쉬고 있다. 이 때문에 간첩 임수호가 도망가는 장면과 운동권 학생들의 시위를 겹쳐 '솔아 솔아 푸른솔아'를 삽입한 것 자체가 황당무계하다.
실제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에 시달렸는 희생자가 여럿 있었다. 지금도 유족들과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이에 통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설강화'는 오히려 간첩을 운동권으로 오인되는 장면을 펼친다. 단순히 여주인공의 단순 오해라고 하기엔 사회적 분위기 상 허용되지 않는 장면이다.
또, 극중 안기부장의 말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JTBC는 안기부장 대사에 대해 "인질극 상황에서 과거 연인인 동료를 구하려는 안기부 직원의 돌발 행동(사격)에 이어진 대사다. 여자주인공(영로) 아버지로 등장하는 안기부장이 딸에 대한 걱정을 숨기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말장난과 같다.
실제 안기부는 극악무도한 기관이었고 본연의 일 외 정치 개입, 운동권 학생들 탄압 등을 해왔다. 실제로 안기부에서 간첩 누명을 씌우고 일가족을 파탄내는 사건도 존재했다. 1980년대 비리·부패를 일삼은 故(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극적 역사에 사과 한 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고 여전히 당시 안기부 직원들은 뻔뻔한 태도를 일관했다. 지난 7월 국가정보원 박지원 국정원장이 중앙정보부·안기부 시절 인권침해 사건에 공개적으로 사과했으나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역사적 상처가 다 씻기지 않은 채, 안기부장의 다른 이면을 그려내는 건 시대를 몰이해한 행동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설강화' 작품과 논란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하 평론가는 "역사는 현대사로 올수록 중요성이 커진다. 특히 현대사를 왜곡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역사에서는 독재 정권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있고 가족과 유족이 있다. 과거 독재 정권을 미화하거나 그들이 내세운 프레임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설강화' 초반 부분을 살펴보면, 본래 안기부는 포악한 존재다. 그런데 그런 안기부가 간첩 잡으로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사감이 막았다는 이유 만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장면은 실제 80년대 안기부의 포악성을 축소시키는 행위, 당시 권력을 적법하게 작동한 것처럼 보이는 오인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설강화'가 역사왜곡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지만, 확실히 불편한 지점이 있다고 바라봤다. 정 평론가는 "'설강화'가 갖는 역사 의식이 일천하다. 1987년도 시대상을 그리는데 인물들 중 실질적인 민주화 운동을 한 캐릭터가 거의 없다. 친구 한 명 정도다. 나머지는 배경이다. 제작진이 누누히 강조하는 멜로 자체에 대해서도 시대에 대한 의식이 없다"라며 "1987년도 분위기나 그때 상황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라면 캐릭터 중 민주화 운동하는 중요한 역할도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즉,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대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도 공정하게 다뤄져야 된다는 것. 정 평론가는 "이런 면들이 삭제됐고 여기서 오는 불쾌감이 있다"라고 평했다.
이어 '설강화' 내 기숙사 인질극에 대해 "간첩이 기숙사에 들어가 여대생을 잡는 테러리즘이 존재한다. 이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긴박하고 절실함이 묻어나와야 하지만 코미디가 존재한다. 몇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상황들이 있다. 이런 건 희화화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희화화했다는 건, 작가의 문제 의식이 얄팍하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제작진의 황당한 변명 "창작의 자유"

'설강화' 제작진들이 누누히 말하고 있는 점은 "창작의 자유"다. 표현과 창작이 어떠한 규제없이 자유롭게 진행돼야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에 속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각종 예술 분야에서 시대가 변하고 극찬을 받는 창작자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설강화'를 밑받침 하는 말일까.
하 평론가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건 맞다"라면서도 "민족의 역사의 정당성을 해치거나 역사에 대한 침탈이 계속 있어왔다. 중국이 계속 역사왜곡하고 침해하는 내용에 호응하거나 식민지, 독재정권, 민주화 등 현대사 내용을 왜곡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현대 독재의 문제는 가족, 유족이 살아있어서 특히 민감한 이슈다. 조심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서유럽에서도 2차 대전, 나치 등에 표현을 자유롭게 하면 안된다. 이 부분을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얘기했다.
정 평론가는 "표현의 자유는 소재적으로 뭐든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대가 갖고 있는 엄중함이다. 콘텐츠는 대중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현재 대중들의 정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은 존폐를 떠나 성공하기 어렵다.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고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1987년의 비극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고 너무나 가까운 역사다. 그러다 보니 대중정서가 당대의 이면을 받아 들일 준비 조차 되지 않았단 것이다. 정 평론가는 "과거 일제 감정기를 다룬 콘텐츠를 봤을 때, 독립 투사 얘기를 벗어나면 욕을 먹는 시대가 있었다. 경성 연애사 작품들이 그렇다. '이게 가능한가'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은 수용할 수 있는 단계다. 일제 감정기도 투쟁사와 근대가 열리는 시대가 공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모던보이'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이렇듯, 대중정서가 이런 문제를 수용할 만큼의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라면서도 "하지만 1987년도는 근거리 얘기고 피해 사실 및 피해자도 있으며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도 활동하고 있다. 이럴수록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는데 제작진은 너무 쉽게 접근했다"라고 전했다.
'설강화'는 드라마 5회까지 방송됐지만 시청자들의 폐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두 평론가는 드라마를 비판하는 것과 폐지는 다른 얘기라고 답했다. 비판은 한 드라마를 넘어 드라마 산업 전체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문화지만, 폐지는 제작 환경에 큰 피해를 남기기 때문이다. 폐지가 이어진다면, 창작자 입장에서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이는 경각심을 안겨줄 순 있지만 콘텐츠 산업 전반을 위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 "시대극, 역사의 맥락 파악·정확한 포지셔닝 필요"

우리나라엔 수많은 시대극이 있다.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일은 작품이 몇 있을 뿐, 영화 '사도' '광해' '동주' '박열' 등과 드라마 '녹두꽃' '추노' '대조영' '황진이' 등은 지금도 언급되는 명작이다. 역사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하 평론가는 "상상을 하긴 하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역사의 맥락을 이하가면 어떻게 상상해도 되고 상상하면 안되는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이순신을 양아치로 상상하면 안되지 않나. 이건 역사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라며 "'설강화'는 제작진이 역사를 모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르니 표현에 문제가 될 거 같다"라고 전했다.
정 평론가는 "과거엔 역사는 역사 그대로 다뤄야 했다. 지금에서야 사극이 허구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며 판타지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며 "시대극은 자기 색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실제 역사만 정통으로 다루거나 역사적 시공간을 빌려오지만 상상을 추구해 역사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한 시대가 아닌 공간 자체를 가져와 그려야 한다. 특히 근거리 역사는 시대만 가져오기 어렵다. 1987년하면 당장 머리 속에서 떠올리는 게 있지 않나. 역사성 무게가 무거우면 무겁게 접근하고 가볍게 접근해야 한다. 대중들이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확실한 포지셔닝과 중대성을 보고 사전 작업하는 건 필수다"라고 말했다.
'설강화'는 방송 시작 전,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기관, 기업, 지명, 사건,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린다"라고 말한다. 정말 작품 내에 실제와 관련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설강화'에서 운동권 학생, 간첩, 시위대, 음악이 모두 1987년대 요소와 비슷하다. 심지어 드라마 방송 전 여주인공 '영초'가 실제 민주화운동한 천영초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에 '영로'로 변경한 바 있다. 이름을 바꾸고 누군가의 이면을 보인 다음 '가상'이라고 하면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민주화 운동 당시 피해자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 시대를 경험했던 정치인, 문화예술인, 교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등장한 '설강화'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나서서 "명백히 역사 왜곡 의도가 있다"라고 말함에도 제작진들은 계속 "오해"라고 받아친다. 또 지난 30일, JTBC는 공식적으로 "본 드라마의 설정과 무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날조된 사실에 대해서는 강경히 대응할 방침"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시대상과 그 안의 요소들을 가져온 이상, '설강화'는 단순 가상에 머물 수 없다. 제작진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 않고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바라본 것과 다름 없다. 청춘로맨스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왜곡 했고, 이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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