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도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하향 곡선을 그리던 좌타 거포는 올 시즌 20홈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승엽 감독이 부임과 함께 부활을 과제로 외친 김재환(35·두산 베어스)은 진짜 살아날 수 있을까.
2008년 입단 후 1군에서 완벽한 주전으로 거듭나기까지 무려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후엔 두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타자가 됐다.
부침이 있었다고는 해도 올 시즌만큼 심했던 적은 없었다. 4년 총액 115억 원에 계약을 맺은 뒤 두 번째 시즌. 이승엽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자신을 빼닮은 왼손 거포의 부활을 두산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반등조건으로 꼽았다.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으나 지난해 9위라는 악몽을 꿨다. 그 가운데엔 믿었던 선수들의 부진이 있었다. 김재환은 자유계약선수(FA)로 팀에 잔류한 첫 해 타율 0.248 23홈런 72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00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새 감독의 기대 속에 돌입한 새 시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두산은 예상 외로 선전했다. 94경기에서 48승 45패 1무로 5할 이상 승률을 기록하며 가을야구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다만 김재환은 이야기가 달랐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그는 좀처럼 좋았을 때 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은 "중심타선 이외 선수들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구는 중심타선에서 제 역할을 하면 승리 확률이 확연히 올라가는 스포츠다. 이들의 활약이 상수가 돼야만 계산이 서는 야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산은 그렇지 못하다. 김재환이 타율 0.228 9홈런 34타점, OPS 0.700으로 살아날 줄 모르고 있고 호세 로하스도 타율 0.229 12홈런 37타점, OPS 0.759로 부진하다. 양석환도 0.279 16홈런 53타점, OPS 0.789로 아쉽기는 마찬가지고 설상가상 제 역할을 하던 양의지(타율 0.323 9홈런 44타점, OPS 906)은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중심타선 이외의 선수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게 두산의 현실인 가운데 김재환이 이승엽 감독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재환은 9일 삼성전에서 호쾌한 솔로 홈런 포함 멀티히트 경기를 치렀다. 양 팀이 1-1로 맞선 5회말 원태인의 높은 체인지업을 공략, 타구속도 시속 170.3㎞로 112.4m를 뻗는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지난달 25일 롯데전 이후 무려 11경기 만에 홈런이었다.


1루를 돈 김재환은 타구가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포효했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마음껏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숨었는지를 알 수 있는 한 방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더그아웃에 돌아온 김재환을 가장 먼저 반겼고 동료들은 김재환이 발끈 할 만큼 격한 '구타 세리머니'를 펼쳤다.
9회에도 선두 타자로 나서 오승환과 9구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중전안타로 출루했다. 멀티히트를 기록한 것도 11경기 만이었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이러면 김재환이 살아날 것 같다"며 "정말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투수들의 공을 따라가지도 못한다. 잘 따라가며 치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10일 전국에 몰아친 태풍 여파로 하루를 쉬어간 두산은 대전으로 내려가 8위팀 한화 이글스와 만난다. 한화는 투수 평균자책점(ERA) 4.18로 이 부문 8위의 팀이다. 올 시즌 부진할 때마다 한 방씩 터뜨리며 수차례나 이승엽 감독과 두산 팬들에 희망을 품게 했지만 번번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곤 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이제야말로 살아나줘야 할 때다. 김재환이 중심타선의 동반 부진으로 고민이 큰 이승엽 감독을 미소짓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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