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4)는 29세이던 1978년 도쿄의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관전하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라톤 마니아로도 유명한 무라카미는 메이지 진구 구장이 위치해 있고 나무가 울창한 메이지 진구 가이엔(外園)에서 조깅을 자주 즐겼다. 그에게 이 곳은 특별했다. 무라카미가 올해 2월 메이지 진구 구장 신축을 포함한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에 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25일 현재 탄원서 서명에 참여한 도쿄 시민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인들이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다. 메이지 가이엔은 수백 그루의 나무들로 가득한 도쿄 도심의 공원이었다. 무라카미와 같이 이 곳에서 조깅을 하거나 휴식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지 가이엔 재개발이 시작되면 상업시설이 들어설 부지 확보를 위해 700그루의 나무가 제거돼야 한다. 도쿄도(東京都)는 더 많은 나무를 주변에 심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재개발 때문에 이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고층 건물이 이 곳에 지어질 경우 돌풍이 불어 주변 주택가와 새롭게 조성될 경기장 시설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메이지 일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메이지 신사 외곽에 위치한 메이지 가이엔은 원래 상업시설 건설에 제한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 지역은 높이 15m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의 주경기장 신축비용 등 올림픽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도쿄도는 규정을 바꿔 고도제한 높이를 80m까지 늘렸다.
도쿄도는 이 지역 신축 건물의 고도제한을 완화해 부동산 개발업체에게 부지를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 메이지 가이엔에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부동산 개발업체도 큰 개발 이익을 기대하게 됐다. 190m와 185m 높이의 상업시설 2개와 함께 대형 호텔과 쇼핑몰이 메이지 가이엔에 지어질 수 있는 배경이 된 셈이다.
하지만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의 논란은 단순히 상업주의와 환경 문제와의 충돌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라카미를 포함한 일본 야구 팬들의 추억과 낭만이 담겨 있는 메이지 진구 구장이 이 개발계획 안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럭비장이 있는 곳에 야구장을 신축하고, 럭비장은 현 야구장 위치에 지어질 예정이다.

1926년 개장해 올해로 9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지 진구 구장은 도쿄 6대학 리그전이 펼쳐지는 장소이자 일본 프로야구 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 구장이다. 도쿄를 상징하는 야구장인 메이지 진구 구장은 1934년 미국의 베이브 루스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함께 일본 투어를 할 때 경기를 치른 역사성을 가진 공간이기도 했다.
일본 야구 팬들은 메이지 진구 구장을 허물고 경기장을 신축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더욱이 팬들은 지난 2014년 내진 설계를 포함한 메이지 진구 구장의 리노베이션이 실시돼 경기장을 허물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메이지 진구 가이엔에 새롭게 들어설 상업시설의 부지 확보를 위해 메이지 진구 구장이 희생양이 됐다는 게 대다수 도쿄 시민들의 생각이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