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 "2016년 신기하고 감사한 한해..스마트폰도 장만"(직격인터뷰)

[2016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6.12.22 09:45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2016년. 스크린에 수 많은 별들이 피고 졌다. 관객을 열광시키고 웃기고 울렸던 수 많은 배우들. 스타뉴스는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 깊은 발자취를 남긴 배우들을 릴레이 인터뷰했다. 세 번째 주자는 엄태구다.


"착해 보인다." "실제로 보니깐 눈이 선해 보이는데요?"

엄태구가 최근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밀정'에서 일본인 경부 하시모토 역을 맡아 장갑 따귀를 엄청나게 날렸던 걸, 익히 봤으니깐. 그만큼 엄태구가 '밀정'에서 강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태구는 '밀정'의 최대 수혜자다. '잉투기'로 발견되고, '차이나타운'으로 주목받았지만, 아직은 무명이었던 엄태구에게 '밀정'은 도전이자 기회였다. 그는 기회를 잘 잡았다. 늘 준비를 해왔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엄태구는 "신기, 그리고 감사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라고 했다. 특유의 저음으로 수줍게 말했다. 신기한 경험들을 했고, 그저 감사했다는 뜻이다.


"올해 초까지 '밀정'을 찍었어요.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 등 여러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을 했죠.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밀정' 개봉할 때 선배님들과 같이 버스 타고 무대인사를 다닌 것도 새로웠어요. '밀정'으로 토론토국제영화제도 갔어요. 첫 해외영화제였죠."

"아, 비지니스석도 처음 타 봤어요"라고 빼먹을까 황급히 말했다. 그의 감사 목록은 이렇게 여러 개가 쌓였다.

이제는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제법 알아본다. 나이 지긋이 든 어른들부터 까르르 웃는 여고생들까지, "어, 맞죠? 실제로는 착해 보이네요"라며 사진을 찍자고들 한다.

"얼떨떨하다"고 했다. "바로 답이 안 나오는 걸 보면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고 했다. 엄태구는 "일단 너무 감사한데 부족한 게 많이 보여서 다음 번에 보완해야겠다는 마음이 많다"고 했다.

사실 엄태구는 '밀정' 개봉을 앞두고 걱정이 컸다. 잘했다는 소리 보다는 거슬린다는 평이 더 귀에 들어왔다. 행여 '밀정'에 누를 끼친 게 아닐까 걱정이 컸다.

"어떤 장면에서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아예 안든 건 아니지만 불안했어요. 부족한 게 많이 보였으니깐요. 그래서 잘했다고 해주시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엄태구는 올해 감사할 게 많다. 친형인 엄태화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가려진 시간'이 '밀정'에 이어 개봉했다. 엄태구도 출연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태구는 '밀정'으로 한참 주목받았을 때 감사헌금을 하지 않았다. '가려진 시간' VIP시사회 이후 감사헌금을 했다. 그에게 감사란 그런 것 같다.

"'가려진 시간' VIP 시사회 때 부모님을 형이랑 같이 모셨죠." 이 말에 그의 감사가 다 담겨 있다.

그렇기에 '가려진 시간'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매일 매일 스코어를 확인했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는 "관객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명, 한명이 진짜 소중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했다.

'가려진 시간'을 그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 어려서 "형 만한 아우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던 그지만, 그랬다. 슬쩍 "형보다 내가 잘생겼다"란 말은 잊지 않았다.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는 요즘 바쁘다. '밀정' 끝난 뒤 송강호가 출연하는 '택시 운전사'를 잠시 찍었다. 그리고 조용익 감독의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찍었다. 아기자기한 멜로영화다. '차이나타운'에서 같이 한 이수경과 호흡을 맞췄다. 다시 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을 찍고 있다. 독립영화다. 아버지 장례식에 생전 처음 나타난 이상한 삼촌과 아이의 이야기다. 이상한 삼촌 역이다.

주목을 받았으면, 상업영화로 훌쩍 내달릴 법 하다. TV드라마 제안도 안 들어온 것도 아니다. 제법 많았다. 악역 제안이 많긴 하다. 하지만 악역이라고 피하는 건 아니다.

엄태구는 "역할을 가릴 때도 아니고 가리지도 않는다. 악역은 또 하고 싶다"면서도 "(아직)TV드라마는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촬영일정에, 느리고 더딘 자신이, 섣불리 참여했다가는 누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래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왔다갔다한다고 했다. TV를 보는 어머니의 등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나이 서른 다섯. 만으로 서른 셋. 마냥 감사만 하기 보다는 욕심을 부릴 만한 나이다. 아니 욕심을 부려야 할 나이다. 이제야 8년 쓰던 폴더폰을 접고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바꾸려고 바꾼 게 아니다. 주위에서 신기하다며 자꾸 만지다 보니 손을 타서 폴더가 헐렁거려 어쩔 수 없이 바꿨다. 돈도 없고 필요도 없고 요금도 훨씬 싸서 썼던 폴더폰은 그렇게 그를 떠났다. 이제 엄태구도 바뀌어 가야만 하는 순간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제 돈 되는 일을 좀 더 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짓궂게 물었다. 엄태구는 신중히 생각한 뒤 입을 뗐다.

"더디어도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도감'도 기도하고 선택한 작품이구요. 그래도 가끔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못드리는 저를 볼 때면, 촬영 끝나고 집에서 혼자 등에 파스 뗄 때는, 아 좀 더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궁함이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때도 있구요. 하지만 이런 고민들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작품 생각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어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솔직한 고민이다. 그 고민이 그를 더 높은 곳으로 올릴 것 같다.

엄태구는 "2016년이 감사하고 신기하고 다시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해 말, 그의 기도가 다 이뤄졌던 것 같다고 했다. 가족건강, 행복, 밀정, 가려진 시간...올해 말, 그는 또 다시 기도를 드릴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와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배우자 기도를 추가할까요?"라며 웃었다.

아마도 2017년은, 엄태구에게 감사하지만 신기한 해는 아닐 것 같다. 더디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내년에도 엄태구는 그렇게 걸어갈 것 같다. 문득 돌아보면 다른 풍경이 보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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