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42. 문화유산이 아름다운 이유-본각사 존치

채준 기자  |  2024.07.25 10:56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명대사 중의 하나다.


황량한 사막에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샘이 우리와 또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한다면 누가 숨어있는 샘을 찬미하고 아름다운 사막을 노래한단 말인가?

서울의 젖줄인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기 바로 직전, 양천구 목동에 높이 78m의 용왕산(龍王山), 일명 엄지산(嚴知山)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봉긋이 솟아 있다. 주변지역이 모두 개발되면서 과거로부터 멀어졌고 지역을 대표하던 소금산업의 흔적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우니 홀로 이름만 남은 용왕산을 사막속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과하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도 필자가 용왕산을 굳이 사막속의 오아시스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실은 다른데 있다. 지나친 도시화의 여파로 심리적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주변지역에 사시사철 정서적 생명수, 정신의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아름다운 샘 본각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금싸라기 대지에 아파트가 아닌 오래된 사찰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최근 수년간 이 놀라운 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심상치 않다. 지난 해 부터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여서 크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도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용왕산 근린공원의 핵심으로서 본각사의 현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서울시장의 결정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샘의 수명이 끊어질 수 있는 무참한 가능성 때문이다.

성산대교/사진제공=pixabay 성산대교/사진제공=pixabay



사막에 숨어있는 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누군지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이 남기는 수많은 흔적들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이고 또 쌓인 그 흔적들이 솟아오르는 샘물의 그윽한 생명력에 삶의 향기를 더해 결코 잊을 수 없는 놀랍고 참신한 분위기를,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유산기본법 제3조는 국가유산을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o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o예술적o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o자연유산o무형유산을 말한다." 고 규정했다. 이어서 문화유산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문화의 고유성, 겨레의 정체성 및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형의 문화적 유산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자연유산과 무형유산과 대비해 볼 때 유형의 문화적 유산인 문화유산이 갖는 의미 또는 성격의 특성은 대단히 분명하다.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어야 하고 문화의 고유성 및 겨레의 정체성 그리고 국민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유산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삶과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무형유산은 물론이고 자연유산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인식조차 될 수 없는 그 무엇이 국가의 유산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한강수계의 어느 곳에서도 용왕산이나 엄지산이라고 불리는 산을 마주치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용왕사라는 사찰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심지어 조선실록을 통째로 검색해 봐도 전국 어디에서도 용왕사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다른 대상을 찾아낼 수 없었다. 용을 특별한 존재로 숭상했던 선조들에게 한강수계 안양천변의 용왕산, 용왕사는 그래서 충분히 특별한 사찰이었을 것이고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양천구청 홈페이지 캡쳐 /사진=양천구청 홈페이지 캡쳐


용왕산, 용왕사가 지금의 본각사로 이어질 때까지 5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런 시간의 긴 흐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온갖 흔적들이 저절로 쌓이고 또 쌓이게 된다. 온갖 삶의 풍파를 묵묵히 겪어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본각사와 용왕산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저간의 깊은 사정을 모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본각사가 문화유산의 향기를, 그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게 되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2001년 11월 2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31차 총회에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을 채택했다. 동 선언 제1조는 " 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집단과 사회의 정체성의 독창성과 다원성 속에서 구현된다. 생물 다양성이 자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문화다양성은 인류에게 있어 교류, 혁신, 창조성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 다양성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며,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한 혜택으로서 인식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고 선언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5월 24일 양천구청이 '본각사' 부지에 문화복합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마련한 '용왕산 공원 조성 주민설명회' 가 본각사 보존불자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무산되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 2024년 현재 전국에 982개소의 전통사찰을 지정하여 보존 및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강남구 등 16개 구청이 전통사찰을 보유하고 있으며, 양천구는 아쉽게도 전통사찰을 1곳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9개 구청 중의 하나에 포함된다. 최근 10년간 전통사찰 지정 건수가 매년 4% 이상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아쉬움이 남는 결과다.

용왕정/사진=양천구청 홈페이지 캡쳐 용왕정/사진=양천구청 홈페이지 캡쳐


500년 역사를 가진 사찰을 없애고 현대적인 문화복합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과연 유네스코가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규정하고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한 혜택으로서 인식되고 보장되어야 할" 것으로 선언한 <문화 다양성>, 이 중요한 목표를 지키려는 인류 공동의 목표에 부합하는 일인가? 아니면, 양천구와 서울시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개선하여 본각사를 양천구 최초의 전통사찰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문화 다양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받을 것인가?

문화의 영역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문화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훼손된 문화유산은 결단코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하다. 용왕산 -> 용왕사 -> 본각사로 이어지는 문화적 기운과 전통이 우리 대에서 훼손되지 않고, 양천구와 서울시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문화 다양성 인식과 보장의 상징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혜택으로, 귀하게 평가받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박영대 행정사법인 CST 공동 대표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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