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투수가 'ITAEWON(이태원)'을 새기고 나왔다, "다들 잊지 않고 기억해주길" 간절한 바람

양정웅 기자  |  2023.11.03 11:10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KT 위즈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KT 위즈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뉴스1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뉴스1
비록 외국인 선수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추모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KT 위즈의 웨스 벤자민(30)이 지난해 일어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자신의 방식으로 추모했다.


벤자민은 지난달 31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 플레이오프 2차전(5전3선승제)에서 KT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말미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그는 25일 만에 실전 투구에 나섰다.

오랜 공백기 때문이었을까. 벤자민은 1회부터 점수를 내주고 말았다. 1회 초 1사 후 2번 박민우에게 중견수 앞 안타를 맞았다. 이어 다음 타자 박건우에게 초구 몸쪽 시속 139km의 컷패스트볼을 던졌다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0m의 2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벤자민은 3회에도 선두타자 김주원에게 3루타를 맞은 후 손아섭의 1루 땅볼을 1루수 박병호가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면서 한 점을 더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벤자민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투구를 이어갔다. 4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낸 그는 5회에도 김주원의 타구에 허벅지를 강타당하는 등 어려운 장면도 있었지만, 침착하게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5이닝 동안 82개를 던진 벤자민은 4피안타 2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고, 6회 시작과 함께 우완 손동현에게 마운드를 물려주며 투구를 마쳤다. 비록 타선이 동점을 만들지 못하며 패전투수가 됐지만, 자신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했다.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이날 벤자민에게는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다. 2차전 그가 쓰고 나온 모자에는 'ITAEWON(이태원)'이라는 단어가 새겨져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팬이라면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당시 할로윈 데이를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159명이 사망한 대규모 압사사고가 일어났다. 플레이오프 1, 2차전이 열린 지난달 30일과 31일이 바로 1주기 기간이었던 것이다.


벤자민도 이 비극적인 사건은 알고 있었다. 3차전이 열렸던 창원NC파크에서 스타뉴스와 만난 벤자민은 "작년에 미국에 돌아갔을 때 이태원에서 안 좋은 사건이 있었다는 걸 접했었다"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와 준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승부 끝에 패배하며 10월 22일에 시즌을 마감했고, 이에 벤자민은 시즌 종료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었다.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뉴스1 KT 벤자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2023 KBO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모자에 '이태원(ITAEWON)'을 새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사진=뉴스1
이어 벤자민은 "한국에서는 안 좋은 사건이라고 들었다"면서 "내가 선발로 나가는 날과 겹치다 보니 추모하기 위해서, 또 그런 감정을 팬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모자에 썼다"고 밝혔다. 마침 경기가 열렸던 날이 할로윈 데이였다는 점도 고려됐다. '많은 팬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말에 벤자민은 "나를 위해서 쓴 것도 아니고, 유가족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또 매년 이 사건을 사람들이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걸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한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던 윌리엄 쿠에바스를 대신해 한국 무대에 진입한 벤자민은 그해 17경기에서 5승 4패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하며 KT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올 시즌에는 29경기에 나와 160이닝 동안 15승 6패 평균자책점 3.54의 성적을 올리며 다승 2위, 탈삼진 4위(157개)에 올랐다. 시즌 막바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2주 동안 단 1경기(2이닝) 등판에 그쳤지만, 회복 후 포스트시즌에서는 정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강철 KT 감독은 2차전 타구에 맞은 벤자민의 상태에 대해 "정통으로 맞아 멍이 많이 들었더라. 움직이는 건 괜찮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KT 벤자민. /사진=뉴스1 KT 벤자민.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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