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기준 / 사진=이기범 기자
"시즌2하면 또 할 거냐고요? 음...야식 많이 주면요!"
때 아닌 야식 타령이 웬 말이냐고? 엄동설한에 땀나도록 뛰고 구르는 액션연기에, 4개월간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카리스마 마초남에서 세상 끝나는 슬픔을 오가는 감정연기까지 펼쳐낸 배우 엄기준(37)의 귀여운 하소연이었다.
한국판 바이러스물의 새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케이블 채널 OCN '더 바이러스'에서 특수감염병센터(CDC) 위기대책반의 반장 이명현 역을 맡은 엄기준. 그는 치명적 바이러스 감염사태를 조종해 온 배후세력을 파헤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번 역할로 데뷔 이래 가장 동적인 연기를 펼쳐내며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더 바이러스', 생소한 장르와 새로운 캐릭터에 눈길 갔죠."
"연기하면서는 정말 재밌었어요. 안 해봤던 역할이었고 동적인 캐릭터다 보니까 아무래도 관심을 더 가져 주신 것 같고요. 사실 감정적인 연기에서 힘든 것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잠도 잘 못자고, 계속 뛰고. 무엇보다 춥고 배고팠죠."
이번 작품 하는 동안 별다른 운동 없이 3~4kg 훌쩍 빠진 체중이 유지됐으니 고됐던 현장을 어렴풋하게 짐작해본다. 주1회 방송에 10부작이었지만, 일반 미니시리즈처럼 강행군을 펼쳤다고. 특히 이명현은 비중은 물론이거니와 움직임도 가장 컸던 캐릭터. 그런데 막판엔 컵라면 하나로 밤을 버텼으니 나름 한(?)이 될 법하다.
"시즌2 하면 또 할 거냐고요? 음...야식 많이 주면할래요. 진짜로, 계약서에도 넣을 거예요. 하하. 근데 제가 부산에서 뮤지컬 일정을 마치고 올라오느라 마지막 회를 아직도 못 봤어요. 솔직히 진짜 시즌2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결말이 시즌2를 암시하듯이 끝났잖아요. 진짜 시즌2 제작할지는 모르지만, 시원하고 깔끔하게 결론이 안 나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드라마에서는 다소 생소한 장르였다.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은 배우로서도 일종의 모험일 것. 마침 비슷한 시기 종편채널 JTBC에서 '세계의 끝'이라는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방송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드라마도 연기도 새 장을 열었다는 호평이었지만, 정작 엄기준은 "드라마로서 바이러스 소재는 처음이라 새 장을 열었다고 해 주시는 것 같다"라는 너스레로 겸손을 떨었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대본 4회까지 읽어 봤는데 재밌었어요. 해보지 않은 캐릭터고 생소한 장르. 지루하지 않고 스피디하게 흘러가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죠. '세계의 끝'도 촬영 전에 시놉시스를 봤는데 소재도 그렇고 비슷하더라고요. 촬영하느라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당시에 '더 바이러스'의 흐름이 더 재밌었다고 느꼈어요. 이제 끝났으니까 '세계의 끝'도 한 번 보려고요."
배우 엄기준 / 사진=이기범 기자
"이명현, 작품 중간에 죽을 뻔도 했죠."
특히 엄기준에게 이명현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기존과 다른 도전이었다. 엄기준이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로서는 보기 힘들었던 액션과 더불어 일명 '마스크 연기'라 불렸던 눈빛 연기가 조화를 이뤄 '명현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만 썼으면 모르겠는데 고글까지 쓰니까 감정 전달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눈으로 연기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을 배웠는데 이번에 그 말을 뼈저리게 느꼈죠. 마스크를 쓰니까 울어도 눈물이 금방 사라져서 표현하기가 힘들었어요. 숨을 쉬면 입김이 위로 빠져나와 고글이 뿌옇게 돼서 수시로 닦고 촬영해야했을 정도죠."
'더 바이러스'는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곳곳의 반전 포인트도 드라마의 흥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엄기준도 스파이의 등장에선 놀라기도 했다고. 무엇보다 엄기준이 연기한 명현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은 드라마 종영 후 알게 된 또 다른 반전이었다.
"드라마가 9회까지 급박하게 전개되다가 10회에 다 결론을 내려다보니 마무리가 좀 아쉬웠죠. 바이러스 사건이 마무리되고 슈퍼 백신에 대한 부작용이 나오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스파이가 있는 줄을 몰랐어요. 유빈이가 스파이라는 것은 저도 놀랐죠. 수길이를 죽인다는 얘기가 있어서 조희봉씨가 '나 시즌2 못 나오는거냐'고 했었죠. 명현이도 죽일까 살릴까 고민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명현과 수길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것 자체도 결국 시즌2를 암시하는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시즌2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엄기준은 "저희끼리도 '시즌2하게 되면 어떤 증상을 보일까' 얘기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눈과 귀 등에서 피를 흘리는 정도였는데, 약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 실핏줄이 터지는 효과를 넣었거든요. 그럼 시즌2에선 시각적 효과가 더 강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어떤 증상을 보여야 될까요"라며 개인적으로도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엿보이기도 했다.
배우 엄기준 / 사진=이기범 기자
"이상형은 박보영, 한 작품이라면 삼촌 역할이라도."
엄기준은 인터뷰에 앞서 비타민을 챙겨먹고, 테이블 위에는 전자담배가 눈에 띄었다. 건강을 꽤 신경 쓰는가 싶었더니, 올해만 4개나 잡혀 있는 뮤지컬을 무사히 잘 공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8월에 영화가 개봉하고, 올해 '몬테크리스토', '삼총사' 일본 공연, '태양을 향해 쏴라', 연말에 뮤지컬이 또 있죠. 삼총사'가 지금껏 했던 뮤지컬 중에서 가장 움직임이 많아요. 달타냥 캐릭터가 펜싱 하고 계속 뛰어다니니까 살이 빠져서, '다이어트 뮤지컬'이예요.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담배도 전자 담배로 바꿔서 70~80%는 줄였어요. 촬영하면서 수면이 부족해 쉴 때는 가능한 잠을 많이 자두려고 하는 편이예요."
드라마나 영화에 집중하면 무대에는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엄기준의 열정은 여전히 무대에서도 뜨겁다.
"간만에 촬영을 하면 긴장을 해요. 연기도 계속 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잠깐쯤 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연기를 쭉 이어가야 디테일이라고 할까 그런 부분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칼도 안 쓰면 무뎌지는 것 처럼요."
이처럼 바쁘지만 엄기준은 올해 스쿠버 자격증과 원동기 면허, 경비행기 자격증에 도전하고 싶다는 작은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렇게 바쁜데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물으니 엄기준은 "때가 되면 할 거예요. 그 '때'가 언제일진 저도 모르겠어요"라고 미소 지었다.
이상형은 따로 없다고 말했지만, 과거 한 방송에서 박보영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 기억났다. 엄기준은 휴대폰 바탕화면을 장식한 박보영의 사진으로 답을 대신했다.
"박보영씨요? 여전히 좋아하죠. 보세요. 제 휴대폰 배경화면도 박보영씨예요. 한 작품으로 만나면요? 저야 영광이죠. 저랑 나이차가 얼마나 나더라. (박보영과 엄기준은 14살차) 전 삼촌 역할이라도 오케이입니다. 아유, 상대역으론 과분하죠. 선생님 역할, 교수님 역할이라도 좋아요. 하하."
박보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엄기준은 드라마를 사랑해준 팬들과 시청자들에 대해 더 큰 마음이 담긴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제가 9회까지 다 봤는데 나름 재밌게 봤어요. 촬영을 한 저로서는 부족하다는 부분이 좀 있지만 재밌게 봐 주신 것 같아서 감개무량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열심히 촬영했어요. 힘들었지만 시청자분들이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