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많은 히트작이 탄생한 2013년의 극장가. 덕분일까, 바쁘게 움직이며 여러 작품을 내놓은 배우들도 많았다. 특히 돋보이는 건 전혀 다른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극과 극을 선보인 이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올해 관객을 쥐고 흔들었던 극과 극의 캐릭터, 극과 극의 배우들을 돌아본다.
일단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와 설경구는 이 분야 올해의 최고봉이다. 각기 올해만 3편의 영화를 내놨다.
◆ 송강호 대 송강호
사진 위부터 '변호인'의 송강호와 '관상'의 송강호 /사진=스틸컷
오는 19일 영화 '변호인'의 개봉을 앞둔 송강호의 경우, 올해 세 편의 영화로 과거·현재·미래, 사극·드라마·SF를 오가며 드라마틱한 변신을 펼쳤다. 봉준호 감독의 SF '설국열차'에서는 근 미래 빙하기를 맞은 인류의 마지막 생존구역 열차에서 꼬리칸의 반란을 돕는 보안전문가로 분했다. 어눌한 마약중독자에 딸바보지만 열차 바깥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정적 인물. 팩션 사극 '관상'에서는 또 달랐다. 관상을 보는 재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세상 물정엔 어두운 아버지가 돼 계유정난이란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았다. 개봉을 앞둔 '변호인'에서는 돈도 비빌 곳도 없는 고졸 출신 세법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인물을 연기했다. 모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관상'은 물론이고 '변호인' 또한 유쾌하게 시작해 점점 무게를 더해가는 흐름이 일품이다. 왜 그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인지를 실감케 한다.
◆ 설경구 대 설경구
사진 위부터 '소원'의 설경구와 '스파이'의 설경구 /사진=스틸컷
출연작 개봉이 한꺼번에 몰린 설경구는 더 바빴다. 지난해 연말 선보인 재난영화 '타워'를 필두로 여름 개봉한 액션 스릴러 '감시자들', 코믹 액션물 '스파이', 묵직한 드라마 '소원'을 연이어 내놨다. 100억 예산이 든 한국형 대작 영화의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로 시작해 야무진 장르물에서 든든히 중심을 잡았는가 하면, 생각없이 웃고 보는 코믹물로 잠시 쉬어갔다가,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결국 관객의 가슴을 쳤다. 한 달을 두고 개봉한 '스파이'에서 '소원'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특히 극적이었다. 아내 앞에서만 작아지는 일급 첩보요원으로 코믹 연기를 펼쳤던 그는 등굣길 당한 끔찍한 폭력의 상처를 평생 안고가야 할 어린 딸 소원이를 보듬는 평범한 아버지로 분했다. 아버지에게서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는 딸을 보며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설경구의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목이 메어오게 했다.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기보다 역할에 쏙 녹아 어우러지며 영화를 돋보이게 한 그는 역시 최고의 배우다.
◆ 이정재 대 이정재
사진 위부터 '신세계'의 이정재와 '관상'의 이정재 / 사진=스틸컷
이정재의 변신도 짚어야 한다. 지난 2월 개봉한 느와르 '신세계'에서 이정재는 폭력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형사 이자성으로 분했다. 자신을 틀어쥐고 흔드는 선배 형사, 잔혹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조폭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팩션 사극 '관상'에 이르러 그 잔상을 완전히 지웠다. 이정재는 조카의 왕위를 뺏은 비정한 왕 수양대군을 섹시한 마초로 재해석했다. 수하를 거느리고 한껏 힘을 과시하는 이정재의 수양대군은 정체가 탄로 날 뻔 했던 순간 비 오듯 땀을 흘리던 이자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드름을 피웠다.
◆ 라미란 대 라미란
사진 위부터 '소원'의 라미란과 '스파이'의 라미란 / 사진=스틸컷
조금 작은 비중을 맡은 배우라면 '스파이'와 '소원'에서 열연을 펼친 라미란이 있다. '스파이'의 요구르트 아줌마 변신 전문 비밀요원은 등장해 뭔가를 하는 순간순간, 빼놓지 않고 폭소를 선사한 올해 한국영화의 최고의 감초였다. 한 달 뒤 '소원'에선 완전히 달랐다. 라미란은 TV에 등장하는 뉴스를 보며 애처로워 발을 동동 굴리다가, 몸져누운 소원이 엄마를 위해 반찬까지 싸서 병원을 찾는 이웃으로 분했다. 그녀가 '입을 찢어뿐다매'라며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을 어찌 잊겠나.
◆ 수애 대 수애
사진 위부터 '감기'이 수애와 '야왕'의 수애 / 사진=스틸컷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극과 극 연기를 펼친 배우를 합치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 '야왕'에서 악녀 주다해란 길이 남을 욕망의 화신을 연기한 수애는 올 여름 바이러스 재난영화 '감기'로 180도 변신을 했다. 신분상승을 위해 딸까지 버린 비정한 여인이었던 '야왕'의 수애는 어디로. '감기'에서 수애는 치사율 100%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에 갇힌 채 오직 딸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참고로 아역스타 박민하가 두 작품 모두에서 그녀의 딸이었다.
◆그리고 유연석 김성균
사진 위부터 '응답하라 1994'의 유연석과 '화이'의 유연석, '응답하라 1994'의 김성균과 '화이'의 김성균 / 사진=스틸컷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두 매력남 칠봉이 유연석과 삼천포 김성균의 극과 극 연기 또한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김성균은 '눈 하나 깜짝 않고'를 넘어 '실실 웃어가며'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로 분했다. 유연석은 멀끔한 외모로 살벌한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조폭이었다. 그랬던 유연석이 순정파 에이스 칠봉이로 여심을 사로잡고, 김성균이 '요정' 별명까지 얻으며 귀요미로 사랑받는 중.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지만, 이정도면 '배신'을 넘어 '사기'가 되시겠다!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