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신혜 / 사진제공=S.A.L.T. 엔터테인먼트
SBS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 지난 12일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누구보다 책임감의 무게가 막중했을 주연배우 박신혜(23)는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모처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유증이 오래 남을 것 같다"며 시원섭섭한 소감을 전했다.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끝났다. 제가 연기한 작품 중에서 '천국의 계단' 이후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시작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김은숙 작가님이 시청률 높은 작품을 많이 쓰셔서 '누가 되지 않을까', '나 때문에 시청률 안 나오면 어쩌나' 고민했다. 좋은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해서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제2의 전성기랄까. '천국의 계단'으로 시작했다면 '미남이시네요'를 거쳐 '상속자들'로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후유증이 오래 남을 것 같다."
박신혜가 '상속자들'에서 가난을 상속받은 자, 차은상으로 분해 보여준 연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 것은 은상이 그녀의 18살 시절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박신혜는 '상속자들'에서 18살의 나이로 짊어지기엔 버거운 현실 속에 발버둥 치는 차은상을 연기했다. 전형적인 캔디인가 싶었지만 그녀가 보여준 차은상은 우울하거나 불쌍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가진 자들의 불행을 보듬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는 시련과 사랑을 통한 성장이 있었다. 박신혜도 성장을 위해 시련을 딛고 일어나야 했다.
"저 역시 은상이처럼 18살에 고민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슬럼프였고 조바심도 났다. 아역이란 타이틀이 싫고 부담스러웠다. 아역 이미지를 벗고 성인으로 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이보다 훨씬 연령대가 높은 연기를 많이 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첫 주연 '천국의 나무'나 그 이후 '궁S'도 부진했다. '깍두기'를 찍으면서 공부는 많이 했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이차이 많이 나는 상대배우와 연기를 하기가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 지쳐있던 박신혜는 답을 찾기 위해 연기 활동을 잠시 접고 학업에 열중했다. 20대가 되고 성인으로서 첫 걸음을 사회를 준비하는 무리 속에 섞여서 지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 동기인 김소은, 고아라 등이 굉장히 활발히 활동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많은 고뇌에 휩싸였다.
배우 박신혜 / 사진제공=S.A.L.T. 엔터테인먼트
"많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친구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나를 다시 찾아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미남이시네요'를 만났다. 나와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장근석 오빠와 연기 하면서 좋았고, 나를 잘 살려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비록 상대 작품인 '아이리스'에 밀리긴 했지만 해외 반응도 좋았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다. 다시 한 번 달릴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그래서 '상속자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박신혜는 특정한 장면을 꼽는 대신 "차은상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때"라고 말했다.
"우는 장면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연기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긴 했었는데 이번 작품이 유독 많았다. 저도 그 시절 평범한 여고생들이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 랑도 다투고 친구 랑도 많이 다퉜다. 그리고 슬럼프에도 빠졌다. 첫 주연 맡고 연기를 하면서 부담감이랄까, 20살의 책임감이 미리 몰려오면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곪아있었다. 차은상도 나와 같았다. 그런 시기를 다시 겪는 것 같았고, 그런 상황들이 힘들었다. 어떤 장면이라기보다는 차은상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때 힘들었다."
박신혜는 은상에게서 자신의 18살 시절을 발견하고, 은상의 마음에 공감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도 그녀의 눈물 연기를 인정했다.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님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것들, 연기했던 것들은 지워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알바에 찌들어 살고 엄마는 말을 못 하는, 18살 여고생이 가지고 있기 힘든 상처를 잘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억울하잖아요, 은상이 대사에도 나에게는 10원어치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을 뿐이라고 할 정도로. 그래서인지 작가님이 작품이 끝나고 나서는 '너무 울려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특히 1부 보시고는 '어쩜 그렇게 억울하게 우냐'고. 그 장면을 작가님은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다. 고생 많았다고 해 주셨다."
배우 박신혜 / 사진제공=S.A.L.T. 엔터테인먼트
극중에서 은상은 일편단심 탄(이민호 분)을 향했지만, 현실에서 그녀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어렵다. 시댁과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돼서. 영도 아버지도 무섭지만 여자에 대해선 터치 안한다고 했으니까.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남자면 좋겠다. 그래도 저는 탄이다. 캐릭터가 아닌 실제 민호 오빠와 우빈이라면? 반반 섞으면 딱 인데. 두 분 다 매너가 넘친다. 민호 오빠는 현장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장난을 많이 친다. 반면 우빈이는 힘들거나 가라앉아 있을 때 조용히 다독여주는 스타일. 둘이 달라서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박신혜는 한때 작품마다 부진을 면치 못했고,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은상이처럼 그녀는 18살의 시련을 이겨냈고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영화 '7번장의 선물'부터 케이블 드라마 tvN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까지 연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7번방의 선물' 이후 힘을 받은 것 같다. '7번방의 선물' 이후 '이웃집 꽃미남'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됐고, '상속자들'도 합류하게 됐다. '이웃집 꽃미남'때 주변에서 왜 케이블로 가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7번방의 선물'을 하면서 다른 것들 보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에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독미를 만나게 됐고. 기존의 발랄하고 힘찬 이미지에서 힘을 좀 빼고 내 자신을 내려놓고 연기를 했다. 데뷔 이래 가장 바쁜 한해였다. 하고 싶었던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게 봐주신 데 감사하다. 열심히 뛰었고, 땀 흘렸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기쁜 일로 가득했다."
여배우로의 성장, 그 무게를 견뎌낸 박신혜.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믿음과 확신이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서 사랑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 인 것 같다. 제 자신은 2% 부족하지만 작품 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도 그 사랑과 팬들을 잃지 않기 위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숙제 인 것 같다. 2014년에는 올해처럼 아시아 투어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팬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었으면. 차기작도 계속 보고 있다. 영화도 얘기하는 게 있고, '상속자들' 이후 많은 감독님들이 제의를 해 주셔서 읽어보고 있다. 고등학생 했으니, 내년엔 특정 직업군을 가지고 있는 20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다."
최보란 기자 r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