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진혁 / 사진=임성균 기자
"현실이었더라도 김원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배우 최진혁(28)은 해피엔딩이었던 '상속자들'에서 홀로 비극을 맞았다.
지난 12일 종영한 SBS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에서 제국그룹의 장남 김원으로 출연한 최진혁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결말을 맞았다.
원하는 위치에 올랐으나, 매일밤 눈물을 삼켜야 하는 그의 모습은 행복한 결말 속 단 하나의 아련함으로 남았다. 그것이 김원이 제국그룹을 얻기 위해 감내할 왕관의 무게였고,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위해 캐릭터가 견뎌야 할 짐이었다.
이처럼 김원이란 인물은 극의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진혁은 김원의 이 같은 매력을 보고 출연을 결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 알지 못한 채 김은숙 작가만을 믿고 '상속자들'에 합류했다.
"사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지 처음엔 몰랐다. 작가님이 아직 전체적인 시놉시스가 나오기 전 '나를 믿어 달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다. 존경하는 작가님이라서 참여하게 됐다. 설명이 별로 없었고 궁금하긴 했지만 워낙 함께 작업 해보고 싶었던 분이었다."
김원은 제국그룹의 둘째 아들 김탄과 배다른 형제로서 초반 갈등의 축이 됐다. 이 때문에 그가 악역으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이후 동생에 대한 진심을 드러내며 따뜻한 속내를 보여줬다.
"처음부터 악역이 아니고 동생에 대한 마음이 남다른데 가정환경 때문에 배척하게 된 것이란 이해는 있었다. 동생한테 독설을 하고 미국가라고 하는 장면에서 '차갑고 무섭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가정환경의 상처 때문에 떠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배우 최진혁 / 사진=임성균 기자
차갑게만 보였던 김원이지만, 결국 모든 부담을 떠안은 것은 그였다. 제국그룹을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김원은 연인 진현주(임주은 분) 대신 집안에서 맺어준 짝과 결혼했다. 최진혁은 실제 그런 상황이 왔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힘들고 집안이 무너지는 상황이면 저도 이런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집이 붕괴하는 수준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그렇다고 동생한테 떠안길 순 없지 않나. 현주랑 원이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을 것"이라며 김원의 입장을 공감했다.
결말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최진혁은 그 과정에서 김원의 아픔과 심경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아쉬워했다.
"사랑을 포기하고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킨다는 부분은 좋았는데,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책임감은 없어서 아쉬웠다. 현주가 '헤어져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사귀는 것도 몰랐던 사람들도 많았다. 현주를 생각하는 마음을 좀 더 많이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현주와의 로맨스가 좀 더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탄이와도 여유 있게 관계가 풀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뭔가 급히 풀려버린 것 같아서. 조금씩 아쉬움은 있다."
살면서 견뎌야 할 무게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배우라면 비슷한 부담이 있지 않을까. 일이 없을 때 불확실한 미래가 무거웠었다. 배우로서 다들 겪는 그런 일인 것 같다. 제가 외아들이라 부모님도 모셔야하는데, 그런 현실적인 것 때문에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배우 최진혁 / 사진=임성균 기자
이민호와는 형제지간으로 연기를 하면서 무척 친해졌다. 현장에서 막내였던 적이 많았지만 하이틴 로맨스 장르였던 이번 작품에선 그도 형으로 대접받았다.
"남자 배우랑 단시간에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많이 친해졌다. 제가 먼저 다가가기 힘들어 하는 성격인데 고맙게도 민호가 편하게 해주고 챙겨주더라. 민호랑 많이 찍긴 했는데, 다른 친구들과는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쉬웠다. 출연배우끼리 단체 채팅을 하는데 아이들이 학교 신 얘기를 많이 하더라. (최)원영 형이랑 저는 모르는 얘기라 울음표시 이모티콘을 많이 썼다."
고교생으로 등장한 이민호도 겨우 2살 연하. '나도 교복 입을 수 있다'는 욕심은 없었느냐는 물으니 최진혁은 "물론 그런 생각도 해 봤지만 그건 내 욕심"이라며 "너무 오버다"라고 웃음 지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애들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고 언젠가 연기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번에 하게 될 '응급남녀'인 것 같다. 거기서 원래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장난스럽고 무게 잡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밝고 명랑한 역할이다."
배우 최진혁 / 사진=임성균 기자
최진혁의 차기작 '응급남녀'는 6년 전에 이혼했던 원수 같은 부부가 병원응급실에서 인턴으로 다시 만나 펼쳐지는 20부작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내년 1월24일 tvN을 통해 방송될 예정. 아직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최진혁은 기대와 설렘을 드러냈다.
"원래는 '5월의 정원'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읽어보니 너무 좋았다. 대사가 입에 잘 붙고 꼭 제가 평소에 하는 말 같았다. 한 번도 안 해봤던 캐릭터였고 제일 해보고 싶었던 로맨틱 코미디라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이번 작품에서 최진혁의 숨겨진 면모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비극적이거나 아픔을 간직한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그의 코믹한 연기 변신을 기대해도 좋을 듯 다. 그의 각오가 대단했다.
"1년 만에 헤어지고 원수가 된 부부라는 설정자체가 되게 웃긴 것 같다. 송지효씨도티저와 포스터 촬영하면서 만났는데 둘 다 밝은 편이어서 잘 맞을 것 같다. 대본을 많이 읽어서 코믹하고 위트 있는 신을 잘 살려보고 싶다. 파격적인 신들이 많이 나온다. 제가 많이 망가진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저한테는 큰 도전이다. 모든 것을 쏟아낼 작정이다."
최진혁은 '상속자들' 종영 후 바로 '응급남녀' 촬영을 이어가며 바쁜 연말과 연초를 보낼 전망이다. 현재의 일에 충실하자는 담백한 새해 계획은 거창한 포부보다 무게가 있었다.
"새해 계획은 따로 세우진 않는 편이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면 후회하고 아쉽고 그런 게 싫어서. 눈앞에 있는 것부터 잘하자는 주의다. 내년엔 군 입대도 앞두고 있다. 벌써 이렇게 됐더라. '상속자들'에서도 또래 가운데 제가 거의 맏형이었다. 군입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가고 싶다. 일단은 '응급남녀'가 코앞에 왔고 거기에 매진해야겠다. "
최보란 기자 r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