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성악가 엄진희, 동양인 최초 호주 그린룸어워드 수상

"세월호 참사로 힘든 고국 분들에게 작게나마 용기와 위로가 되길"

시드니(호주)=김서희 통신원   |  2014.04.30 17:04
호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Greenroom Award에서 오페라 부문 여우 조연상을 아시안 최초로 수상한 한국인 성악가 엄진희(Eva Kong) 호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Greenroom Award에서 오페라 부문 여우 조연상을 아시안 최초로 수상한 한국인 성악가 엄진희(Eva Kong)


지난 4월28일 호주에선 새로운 예술계 스타가 탄생했다. 바로 한국인 성악가 엄진희(영어 이름 Eva Kong)씨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아카데미, 프랑스 칸영화제로 비유될 정도로 호주가 자랑하는 그린룸 어워드(Greenroom Award) 시상식 오페라 부문 여우 조연상에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엄진희씨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워낙에 외국인에게는 인색하기로 유명하고, 특히나 동양인은 전례가 없기에 그녀의 수상은 호주를 비롯한 세계적인 예술계 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 그린룸 어워드는 연극, 코미디, 오페라, 뮤지컬 등 모든 라이브 예술분야에서 예술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작품 출연진 중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뽑는 명성 높은 시상식이다. 그러기에 지난 수상 명단에는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거머쥔 호주 출신 영화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같은 톱스타들의 이름들로 빼곡하다. 호주출신 스타들이거나 서양 예술인들 위주로 시상자를 선정해왔던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란 평가를 받았던 그린룸 어워드에서 이례적으로 동양인인 엄진희씨에게 트로피를 선사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해 그녀가 출연한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Nixon in China)'. 호주에서 전체 제작방식으로는 초연되어 4일 공연 전석매진을 기록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오페라로 그녀는 극중 모택동의 아내 역을 맡아 오페라계에서는 일명 ‘죽음의 아리아’라도 불릴 정도인, 인간이 낼 수 있는 고음의 한계를 휠씬 뛰어 넘는 고 난이도 고음을 필요로 하는 아리아를 완벽하게 연기해 현지인들의 극찬을 연일 받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조수미씨도 얼마 전 프랑스에서 같은 모택동 아내 역을 맡아 열연했을 정도로 최고 기량을 인정받는 극 소수의 소프라노들에게만 허락되는 배역이다.

음악신동으로 불리던 아이, 한양대 음대 전체 수석으로 입학


지금은 호주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Opera Australia) 소속단원으로 활동 중이지만 엄진희씨는 한국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으로 인정받던 재원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고모들의 영향으로 4살 때 하루 6시간씩 피아노를 쳐도 마냥 즐거워하던 바비인형보다 피아노 건반을 더 좋아하는 타고난 음악신동이었다. 은광여중과 은광여고를 나온 그녀는 고등학교 때 다른 사람들보다 작은 손 사이즈로 (손 사이즈를 늘리는 수술까지 감행했지만 역 부족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피아노를 포기하게 된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었지만 선천적인 신체적 결함으로 피아노를 접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사춘기였던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좌절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역경이 엄진희씨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악곡을 부르는 친구들의 반주를 도맡았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성악을 부르게 되었고, 잠재되어 있던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할 것을 적극 권유받게 된 것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딸이 갑자기 성악을 한다는 발언에 부모님들은 염려와 우려로 반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단식까지 감행하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으로 성악 전공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성악을 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게 시작했기에 힘든 점도 많았지만 포기치 않고 재수까지 하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 한양대학교 음대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후 2002년 이탈리아 Giacomo Laurivolpi국제 콩쿨에서 최연소 1위 수상을 시작으로 동아일보 콩쿨 여자성악 최연소 1위 등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나가 한양대 재학 중 두 번이나 공로상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의 엄진희, 사진 왼쪽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의 엄진희, 사진 왼쪽


한국가곡만을 부르는 호주 공연 주인공으로 서는 게 꿈


워낙 출중한 실력으로 줄리어드 음대 등 외국 유명 음대로부터 숱한 러브콜을 받았던 엄진희씨는 당시 남편의 새로운 직장 발령지인 호주를 제 2의 성악인생을 펼칠 무대로 선택하게 된다. 호주 음대에서 전액 장학금과 보장을 약속받은 그녀는 졸업 후 호주 Opera Australia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6살 난 딸과 돌을 갓 넘긴 아들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그녀는 뛰어난 능력이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로도 많은 현지 단원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그 예로 줄곧 주연만 맡았지만, 호주에서는 신인이라는 자세로 이름 없는 코러스도 자청해서 맡고 무대를 벗어나서도 스태프를 항상 먼저 챙기는 겸손한 스타로 유명하다. 또한 그녀는 현지 유명 인사들로 구성된 개인 팬클럽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주 국민 마스터 셰프라 불리는 Maggie Beer는 우연히 그녀의 공연을 3년 전에 본 후 그때부터 어느 나라 어느 공연장이든 그녀의 오프닝 공연에는 항상 정중앙 VIP좌석을 가장 먼저 예매해 응원한다. 고 파바로티를 키운 세기의 지휘자 Richard Bonynge도 그녀의 노래를 들은 후 개인적으로 레슨을 자청해 주변의 놀라움을 자아내었다. 이번 시상식에는 다른 공연 일정으로 비록 직접 참석은 못 했지만 그녀는 현지 매체를 통해 아래와 같은 말로 소감을 전했다.

"저의 수상이 현재 세월호 참사로 힘든 대한민국 고국 분들에게 아주 작게라도 용기와 위로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저와 함께 무대에 오른 동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노래는 국경과 인종과 언어 모든 것을 초월해 감동을 주는 도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의 노래로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드리는 성악가로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가곡만을 부르는 공연을 언젠가는 꼭 호주에서 마련하는 꿈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호주인들에게 Super Korean 이라 불리는 한국인 엄진희씨. 앞으로 그녀는 여성이 내는 가장 높은 고음으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소프라노 'Eva Kong'이란 타이틀로 대한민국의 위상도 고음처럼 호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높게 알릴 것이다.


시드니(호주)=김서희 통신원 sophie@hojudonga.com

사진제공=호주동아일보, Photograph by Jeff Busby, courtesy of Victorian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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