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나경민(25).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매서운 눈빛. 다부진 자세. 저돌적인 주루 플레이.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나경민(25)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까지 1군 무대에 등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경민은 새로운 돌격대장으로 롯데의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덕수고를 졸업한 나경민은 2009년 시카고 컵스에 입단하며 KBO리그가 아닌 미국 무대에 먼저 발을 디뎠다. 그러나 미국에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는 2011년까지 더블A로 올라간 뒤, 2012년 샌디에고 파드리스 소속으로 트리플A까지 진출했으나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이듬해 3월 방출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나경민은 곧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2013년 11월부터 공익 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소집해제 후 모교인 덕수고에서 훈련을 시작한 그는 2016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고 마침내 본격적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먼 길을 돌아왔던 그였지만, 곧바로 1군 출전의 기회가 오진 않았다. 나경민은 왼 어깨 부상 여파로 재활과 치료에 매진, 2군 경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9일 이여상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드디어 1군 출전 기회를 잡게 됐다. 사실 기대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조원우 감독도 점검 차원이라며 콜업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활용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경민은 1군 등록일인 지난 9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대타로 출전, 1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타석에서 보여준 강렬한 눈빛, 저돌적인 주루 플레이가 롯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나경민은 선발과 대타 등을 오가며 롯데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그리고 20일 사직 KIA전에서 제대로 사고를 쳤다.
이날 나경민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김문호를 대신해 2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첫 타석부터 장타를 신고했다. 나경민은 팀이 0-4로 뒤진 1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KIA 타이거즈 선발투수 헥터 노에시를 상대로 2루타를 터뜨렸다. 이어 후속타자 저스틴 맥스웰의 2루타 때 홈을 밟으며 팀에게 만회득점을 안겨줬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신고하며 멀티히트를 기록한 그는 팀이 3-5로 뒤진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기습번트 안타를 만들어냈다. 타구 방향이 절묘했고, 속도 역시도 적절했던 만큼 충분히 세이프 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경민은 1루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하는 허슬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후 롯데는 나경민의 안타를 발판 삼아 대거 6득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고 9-6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팀 승리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던 만큼 기분이 들뜰 법도 했다. 그러나 나경민은 차분했다. 경기 후 나경민은 "타석에서 내가 잘 해야 하는 게 출루라고 생각한다. 8회 기습번트로 나가려고 했던 것도 '살아나가야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기 때문이었다"며 "집중하려 했고, 또 빠른 발을 잘 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몸 상태에는 이제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 나경민은 "1군에 올라오기 전부터 경기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은 생각을 했다. KBO리그에서는 변화구 승부가 많은 것을 알게 됐고, 그에 맞춰 코칭스태프와 이야기를 하면서 타이밍을 잡는 데 주력했다.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큰 목표도 없었다. 차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경민은 "팀 외야진에 좋은 선수들이 많은데, 경쟁보다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에서 뛸 때 많이 힘들기도 했고, 군 복무를 하면서도 야구를 하지 못하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제 막 1군 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한 나경민의 질주는 어디까지 이어지게 될까. 독기 서린 눈빛, 그리고 허슬 플레이로 똘똘 뭉친 롯데의 새로운 돌격대장 나경민의 활약에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