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현장] ⑤ MLB '저연봉자' 최지만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죠"

글렌데일(미국)=한동훈 기자  |  2018.11.20 06:15
최지만(왼쪽)과 글렌데일 야구팀. 가운데는 트루질로 감독. /사진=한동훈기자 최지만(왼쪽)과 글렌데일 야구팀. 가운데는 트루질로 감독. /사진=한동훈기자
한국 프로스포츠,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

국내외를 막론하고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필요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구단들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이런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의 사회 공헌 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하면 더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됐다.


프로 스포츠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국내 구단들도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 명문 구단들과 비교하면 아직 질적, 양적 측면에서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스타뉴스는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들과 국내 구단의 사회 공헌 활동을 현장 취재해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축구 중심' 독일·영국 구단, 사회 공헌도 '톱 클래스'


② '어린이·실업자에게 저녁 한 끼를' 스코틀랜드 셀틱의 창립 목적

③ 일본 감바 오사카, 지역 사회의 '해결사'


④ '아이 행복 우선' 일본 비셀 고베의 사회공헌

⑤ MLB '저연봉자' 최지만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죠"

"와우, 크리스마스다."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27)은 지난 1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 대학 야구팀을 찾아 최고급 방망이 50자루를 전달했다. 7500달러 상당이다. 우리 돈으로는 850만원에 달한다.

메이저리거들이 쓰는 배트를 손에 쥔 대학 선수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자리에서 일일이 포장을 뜯어 손잡이를 잡아보며 손맛을 봤다. 한 자루에 150달러나 하는 선수용 방망이는 아마추어 학생들에게 최고급 아이템이다. 팀 주전 포수 조니 셔팩은 "이걸로 때리면 공이 훨씬 멀리 날아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물질적인 도움도 물론이지만 '메이저리거'라는 존재감도 매우 크다. 글렌데일 대학 야구팀의 에드 트루질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최지만을 보며 엄청난 동기를 갖는다. 시즌 때도 그의 경기를 항상 챙겨보며 롤 모델로 삼는다. 그런 선수가 비시즌에 이렇게 찾아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장난도 치고 사적인 대화도 나누며 지낸다. 다들 'Next Choi'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입성 직후부터 나눔 실천

최지만은 2016시즌을 앞두고 글렌데일 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마이너리그 FA 신분이었다. 마땅한 훈련 장소가 없어 이 대학에 도움을 청했다. 최지만은 이 때부터 매년 1월 글렌데일 대학의 훈련장에서 2월의 팀 스프링캠프를 준비한다. 2016년 대망의 빅리그 데뷔 꿈을 이룬 최지만은 지난 3월 글렌데일 대학 야구팀에 3000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글렌데일 대학은 이 돈으로 전광판을 교체했다.

사실 최지만은 메이저리그에선 아직 최저 수준의 연봉을 받는 풋내기다. '기부'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긴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16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연봉을 받았다. 올해 간신히 서비스타임 1년을 채웠다. 2019, 2020년을 풀타임으로 보내야 연봉조정권한이 생긴다. FA는 멀었다.

최지만이 가져온 방망이를 보고 기뻐하는 글렌데일 대학 선수들. /사진=한동훈기자 최지만이 가져온 방망이를 보고 기뻐하는 글렌데일 대학 선수들. /사진=한동훈기자
그럼에도 최지만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며 자기만의 뚜렷한 소신을 강조했다. 최지만은 2016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직후부터 나눔을 실천했다. 당시 LA 에인절스 소속이던 그는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서길원을 에인절스타디움에 초청해 시구를 맡겼다. 장학금 2만 달러도 건넸다. 그 해 겨울엔 서길원의 모교인 충주성심학교 야구팀을 서울 고척스카이돔으로 초청해 레슨도 펼쳤다. 야구용품도 지원했다. 2017년에는 자신이 졸업한 인천 서흥초등학교에 재능 기부와 함께 1000만원 어치 야구용품을 기증했다.

사비 털어 재단 'CHOI 51' 설립

이 모든 일은 사비를 털어 진행했다. 재단 'CHOI 51'을 설립하긴 했지만 기금은 최지만이 100% 사비를 들여 운영한다. 독립적으로 굴러갈 만큼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주변에서 다들 뜯어 말렸다고 한다. 확실한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자리 잡은 뒤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이다.

최지만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최지만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해에 재단을 설립하긴 했어도 출전시간이 들쑥날쑥하는 등 주전은 아니었다. 불안한 신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인데 더 불확실한 미래로 미루기 싫었다. 아마 그 때 미뤘다면 서길원 선수를 메이저리그 구장에 초대하는 일도 흐지부지됐을 것"이라 돌아봤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싶다는 최지만의 마음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쌓여왔다. 그는 2010년 19세의 나이로 미국에 건너와 6년 넘게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뎠다. 최지만은 "낯선 미국 땅에서 많이 힘들었다. 내가 중심을 잡고 쓰러지지 않은 원동력은 바로 주변의 도움과 응원이었다. 어려운 처지에서는 아주 작은 도움만 받아도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몸소 느꼈다"고 돌아봤다.

마이너리그 시절, 서길원 선수의 소식을 접하며 재단 설립을 결심했다. 최지만은 "나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충주성심학교 서길원 선수 사례는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그 때는 나도 경제적으로 궁핍해 크게 무언가 해줄 수 없었다. 야구용품을 전했다. 작은 힘이라도 누군가 주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 때 마음을 먹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다면 반드시 내가 받았던 사랑을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서길원(왼쪽) 선수와 최지만 /사진=최지만 에이전시 제공 서길원(왼쪽) 선수와 최지만 /사진=최지만 에이전시 제공
"액수보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

한국의 기부 문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지만의 시도가 무모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아직 기부는 초고액 연봉자들의 전유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 최지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웃었다. 최지만은 "99개를 가진 사람이 100개를 채우고 싶어 한다고들 한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기부나 환원이 매우 자연스러운 미국 분위기 자체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트루질로 감독은 "미국은 지역 사회부터 서로 돕는 풀뿌리 나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도 나 몰라라 하는 스타들이 많은데 최지만은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최지만 또한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받은 건 돌려준다'고 교육을 받는다. 마이너리그 선수들 월급이 정말 적지만 거기서도 푼돈을 갹출해 좋은 곳에 썼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반드시 거액만이 좋은 기부는 아니다. 최지만은 "아무래도 미국과 한국은 인식 자체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내가 적은 액수를 기부했다고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계셨다. 중요한 점은 액수보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하려는 의지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나눈다면 받는 이는 물론 나누는 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단과 연계해 더 적극적인 활동 기대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활동은 역시 서길원 선수 시구다. 약속한 지 2년 만에 성사됐다. 최지만은 "2014년에 길원이를 알게 됐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야구용품은 우편으로 보냈고 SNS로 연락했다. 그러면서 '내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면 꼭 야구장에 초대해 시구를 하게 해주겠다'고 말했었다"고 떠올렸다.

서길원 선수는 2016년 9월 LA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올랐다. 최지만은 "약속이 현실이 되는 데 만 2년이 걸렸다. 날짜가 잡히고 길원이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며칠간 수화도 연습했다. 시구는 내가 받았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때와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시구 후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둘은 경기 후 한인 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다. 최지만은 밥을 먹는 서길원 선수의 모습에서 마이너리그 시절 자신을 봤다. 최지만은 "길원이가 4그릇을 먹더라. 내가 마이너리그서 고생할 때 그랬다. 마음껏 무엇을 먹을 수 없어 누가 사줄 때 많이 먹었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사줬던 분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나는 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선수가 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물론 아직은 하고 싶은 일에 비해 여유롭지 못하다. 최지만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탬파베이 구단은 마침 2019시즌 최지만의 전담 통역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시즌 최지만을 중용할 계획임을 알 수 있다. 간판 선수로 발돋움하게 된다면 구단과 연계해 더욱 적극적인 나눔 활동도 가능하다.

재단 관계자는 "돕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한계가 있다. 최지만 선수가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도약한다면 더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재단과 기업이 연계해 최지만 선수의 홈런 1개당 얼마씩 기금을 모아 좋은 곳에 쓰는 등의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기대했다.

*본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