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와 김태리 /사진=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창간기획] 반려동물 천만 시대..드라마·영화 속 동물들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나
문화 콘텐츠가 지닌 파급력과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로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한국 사회의 부의 양극화를 꼬집은 영화 속 반지하는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이 됐다. 정부는 당시 '기생충' 흥행을 계기로 주거 복지를 위한 반지하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계획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침수 피해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현실 속 반지하는 더 참혹하고 참담했다.
올해 대박을 터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천재 변호사 우영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 같은 능력을 지닌 자폐인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는 한계점도 드러냈다.
콘텐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스타뉴스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받아들인 콘텐츠에 대해 짚어보고,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K-팝, K-드라마, K-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회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본다.
TV드라마, 예능, 영화 속 동물들은 항상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강아지 고양이 등 작품 속 반려동물들은 마스코트처럼 사랑받았고, . 사극이나 시대극 속 등장하는 말 등은 작품에 현실성을 더하며 꾸준히 촬영장에 동원됐다. 연기가 하고 싶어서 촬영장에 온 동물들은 없겠지만, 어쨌든 동물들은 사람들의 보살핌 속 콘텐츠에 담겼다. 최근에는 이런 동물 촬영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며, 촬영장의 동물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제공=KBS 1TV '태종 이방원', 티빙 '장미맨션' 포스터
'태종 이방원'이 불러온 촬영장 동물 학대 논란... 동물권 '현주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드라마 제작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방송 촬영과 쪽대본 시스템으로 종영 직전까지 빠듯하게 흘러갔다. 2011년 장항준 감독은 SBS 드라마 '싸인'을 연출했을 당시 "대본 때문에 나흘이나 밤샘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다가 '이러다 내가 죽겠다'고 생각돼 그만뒀다"고 드라마 제작 시스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빡빡한 드라마 촬영장은 동물들에겐 더욱 가혹한 현장이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방영됐던 KBS 1TV 드라마 '용의 눈물'에선 극중 이방원(유동근 분)이 신덕왕후(김영란 분)에게 노루를 내던지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노루를 마치 물건처럼 다루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2014년 KBS 2TV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선 토끼를 목욕시키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쇼크사 위험으로 물로 씻기면 안 되는 토끼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촬영이었다.
사전 제작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촬영장은 일단 숨통이 트였지만, 동물권은 여전히 침해당하고 있다. 지난 5월 종영된 KBS 1TV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선 촬영에 이용된 말이 사망에 이르러 동물보호법 개정안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극 중 이성계(김영철 분)가 낙마하는 장면을 찍을 당시 말을 줄에 묶어 강제로 넘어트린 것으로 드러나 학대 논란이 일었다.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더욱 컸다.
'태종 이방원' 말 학대 논란 /사진=동물자유연대
당시 '태종 이방원' 방영 중지를 요구한 국민 청원은 13만 건을 돌파했으며, '태종 이방원'은 약 6주간 방영을 중단했다. KBS 측은 "이번 사고를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말을 강제로 고꾸라뜨려 촬영하는 낙마 장면은 '정도전', '각시탈' 등 다른 작품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장미맨션'에선 길고양이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또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훈련된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고양이 특성상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는 연출로, 촬영에 동원된 동물에 대한 고려가 전혀 되지 않은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제작진은 해당 장면을 편집했고 "실제 가학행위는 없이 간접적인 묘사로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연출을 맡았던 창 감독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재 '애완' 동물은 '반려' 동물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동물권을 확립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반려 인구가 증가한 만큼 그들을 위한 병원 진료, 전담 부서, 가전 시장 등이 넓어졌다. 이제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도 더욱 경각심을 갖고 성장해야 한다.
동물을 그저 촬영을 위한 소품처럼 취급하는 것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행태다. 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미국에서 줄을 이용해 말을 넘어뜨리는 촬영 방식은 지난 1939년 이후 금지됐다. 전 세계를 들썩인 K-드라마를 만들어낸 한국에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80년 넘게 뒤처져 있다는 얘기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 촬영 후 제작진에게 입양된 유기견 오구 / 사진=오구 인스타그램
김태리가 키우던 오구는 어디 갔을까...? 동물권에 관심 가지는 영화계
2018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는 오구라는 강아지가 등장한다. 극중 김태리의 반려견이 된 오구는 하얀 백구로 흔히 진도믹스로 알려진 믹스견이다. 새끼 강아지 오구는 귀여운 얼굴로 영화 속에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임순례 감독은 유기견으로 임시 보호 중이던 오구를 영화에 캐스팅, 함께 촬영했다. 임순례 감독과 제작진은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오구를 좋은 가족을 찾아 입양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촬영하면서 정이 들었고 영화 스태프인 구정아 프로듀서가 직접 오구를 입양했다. 촬영장에서 모두가 가족처럼 반려하던 강아지를, 결국 끝까지 책임 진 것이다. 유기견과 촬영을 하고 입양을 한 '리틀 포레스트' 오구의 이야기는 촬영장에서의 동물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다.동물권에 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 주최하는 서울동물영화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서울동물영화제 측은 스타뉴스에 "동물의 삶에 집중하는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영화제에 다양한 층위의 관객이 참여하고 있다. 삶을 변화시키는 영화의 힘을 매년 영화제에서 느낄 수 있다"며 "동물영화제를 통해 비건지향을 결심한 관객들을 만나게 되고, 그 관객이 다음 영화제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영화는 낯설게 느꼈던 현실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고, 새로운 전환을 상상하도록 돕는다"고 밝혔다.
/사진=서울 동물 영화제
이들은 영화로 전하는 동물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동물영화제 측은"한 편의 영화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영화 속 동물은 단단하다고 여긴 인간중심 사고를 깨뜨리고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월 복날을 앞두고 카라와 '그만먹개(犬) 캠페인 2022'이 손을 잡고 "식용 개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릴레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개고기 소비 절벽, 과도한 육식주의 지양을 목표로 하는 정윤철 감독의 '미트 소믈리에', '식용개'는 없음을 널리 알려 하루라도 빨리 이 땅에서 개식용 산업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조세영 감독의 '꽃별이의 여름', 이옥섭 감독의 '각자의 바다로', 개는 닭부터 돼지까지 '식용동물로' 태어난 존재가 없음을 알리는 이하루 감독의 'PREP: 당신의 거룩한 복날을 위하여(For Your Sacred Happy Meal)' 등이다.
유명 감독들이 이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은 물론이고 촬영장에서 동물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고민도 더욱 깊어졌다.
/사진=용이 감독 프로젝트 '복날의 개를 좋아하세요'
반려동물 천만 시대... 긍정적인 변화와 앞으로의 숙제
반려동물 천만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그 인식에 있어서는 아직 유럽이나 미국 등에 못 미친다. 동물과 함께하는 촬영 등에 대한 인식도 해외와 한국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부터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동물이 나오면 "전문가의 지도하에 안전하게 동물 촬영이 진행됐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같은 변화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갈 길도 멀다.
해외에서는 이 같은 문구를 전문가 확인 하에 넣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제작진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런 문구를 넣는다. 어떤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제작진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이 같은 문구를 넣는 것이다.
카라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영화와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No Animals Were Harmed"이란 표시는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 the American Humane Association)'의 인증마크이다. 영화·방송 제작 과정 중 어떤 동물도 다치거나 해를 입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 인증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아주 길고 복잡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제작사는 동물을 촬영하기 전에 AHA에 스크립트, 촬영스케줄, 스토리보드 등의 서류와 등록양식을 제출하고, AHA의 동물 안전 담당자가 직접 촬영 현장에 참여해 동물 행동을 직접 모니터링하고 보고서로 남긴다. 촬영 완료 후 개봉 전 AHA에 최종 버전의 영상물을 시사한 뒤, 모니터링한 동물행동을 최종 확인한 후 인증마크를 발행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경우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와 자체 협약을 맺고, 동물단체에게서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을 수시로 자문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드는 만큼, 동물과 함께하는 촬영에서 이처럼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힘 정운천 국회의원은 영상 촬영에 이용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동물보호법)을 발의했다. 촬영 과정에서 동물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동물 학대를 규명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운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영상물 촬영 과정에 이용되는 동물에 대한 적절한 사육, 관리 방법을 정하도록 하고,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동물 학대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태종 이방원'에서 벌어진 말 사망 사건 이후, KBS는 촬영 동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앞으로 이런 가이드라인이 허울로만 남지 않고, 실제로 지켜질 수 있도록 규제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런 원칙이 세워진다면, 촬영 효율만을 추구하다가 발생하게 되는 동물 학대 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성열 기자bogo109@mt.co.kr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