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한국의 4-2 승리를 확정하는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황희찬(위)이 골을 성공시킨 뒤 두 차례 선방을 펼친 골키퍼 조현우와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리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이란. /AFPBBNews=뉴스1
# 우승 후보끼리 '빅매치'가 곧바로 펼쳐진다
우승후보로 손꼽히던 '4강' 한국(FIFA랭킹 23위), 일본(17위), 이란(21위), 호주(25위)가 모두 8강에 올라 곧바로 맞대결을 펼친다. 여기서 두 팀만이 살아남아 준결승에 진출한다. 다른 두 팀은 반드시 짐을 싸야한다. 한국은 호주와, 일본은 이란과 각각 격돌한다.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우승 후보끼리 맞붙는 빅매치다. 토너먼트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두 팀은 준결승에서는 만나지 않는다. 한 고비를 더 넘겨 결승에 진출해야 비로소 최후의 대결을 펼칠 수 있다.
호주의 골 세리머니. /AFPBBNews=뉴스1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4회) 일본도 한국처럼 뜻밖에 D조 2위(2승 1패)로 밀려났다. 이라크에 1-2로 일격을 당한 탓이다. 바레인과 16강전에서는 3-1로 무난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합류해 우승 후보의 면모를 되찾았다. 이란과 8강전은 2011년 이후 13년 만의 우승 도전에 가장 큰 고비다. 이란은 조별리그 C조에서 3전 전승을 거두고 1위를 차지했지만 시리아와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힘겹게 승리를 안았다. 1968, 1972, 1976년 대회 3연패를 달성한 후 48년 만에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기뻐하는 일본 대표팀. /AFPBBNews=뉴스1
요르단(87위)은 조별리그 E조에서 한국과 대결에서 앞서가다가 2-2로 비긴 저력의 팀이다. 조 3위(1승 1무 1패)로 16강에 오른 뒤 D조 1위(3승) 이라크와 대결에서도 1-2로 밀리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과 결승골을 연거푸 폭발하며 3-2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8강에 올랐다. 타지키스탄(106위)은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처음 나서 A조 2위(1승 1무 1패)를 차지한 데 이어 16강전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전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UAE를 만나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8강까지 진출하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 슛을 막아낸 골키퍼 조현우(21번)와 함께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뉴시스
2023 아시안컵 16강 토너먼트의 첫 관문에서는 세 차례의 승부차기가 펼쳐졌다. 승부차기가 8강 대진의 세 자리를 완성했다. 우승 후보 한국과 이란도, '돌풍'을 몰고다니는 타지키스탄도 승부차기를 통해 8강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승부차기는 토너먼트 녹아웃 승부에서 짜릿한 묘미를 선사하는 장치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연장까지 무승부면 재경기를 하거나 동전 던지기를 하고, 공동 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승부차기는 1970년대 들어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유럽 무대에서는 1976년 유고슬라비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976)에서 처음 채택됐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서독과 결승에서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체코의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안토닌 파넨카가 그 유명한 '파넨카 킥'으로 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승부차기는 승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을 주지만, 패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열패감을 안겨준다. 승부차기를 '축구의 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제프 블라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처럼 '재앙'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승부차기는 공식 기록에는 무승부로 처리된다.
승부차기에는 키커의 자신감과 두려움, 골키퍼의 순간 대응력 사이에서 긴장감과 신경전이 교차한다. 키커의 성공 확률이 분명히 훨씬 높지만, 그만큼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골키퍼는 선방하면 '영웅'이 된다. 오히려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더 유리한 싸움이기도 하다.
기뻐하는 타지키스탄 선수들(흰색 유니폼). /AFPBBNews=뉴스1
가장 먼저, '돌풍의 주역' 타지키스탄이 '벤투호' UAE를 승부차기에서 5-3으로 물리치고 첫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서 8강 진출까지 이뤄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우즈베키스탄 등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축구 변방 106위'의 대반란이었다. 승부차기가 타지키스탄 축구의 새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UAE는 타지키스탄의 돌풍에 휘말려 2015, 2019년 대회에서 연속해 4강에 오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타지키스탄은 승부차기에서 키커 5명 모두 성공한 반면, UAE는 2번 키커 카이우 카네두가 실축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 /사진=뉴시스 제공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승부차기로 웃고 울었다. 1972년 태국 대회에서 이라크와 조편성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처음 승부차기를 가져 2-4로 패했지만 태국과 준결승에서는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2-1로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 이란과 결승에서는 1-2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가져 아쉬운 패배를 안았다. 결승 상대는 사우디였다. 당시 한국은 UAE(1-0), 일본(2-0), 카타르(3-2), 이란(3-0), 중국(2-1)을 연파하고 기세좋게 결승에 올랐지만 사우디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또 한 번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 사우디와 승부차기 승리는 36년 전의 설욕전이었다. 사우디는 아시안컵에서 승부차기에서 4차례 승리만을 안다가 이번에 첫 패배의 쓰라림을 맛봤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월 31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팅센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지성. /사진=뉴시스
한국은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도 일본과 준결승에서 만나 2-2로 비긴 뒤 또 승부차기를 겨뤘다. 이때는 0-3으로 완패했다. 키커로 나선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가 모두 실패했다. 손흥민이 이번 대회 사우디전에서 13년 만에 가진 아시안컵 승부차기 뒤 박지성을 소환했던 바로 그 대회다. 박지성과 손흥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뛴 대회였다.
기뻐하는 이란 선수들. /AFPBBNews=뉴스1
8강전 이후에도 또 어떤 승부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축구공은 둥글고, 그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승부차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당히 운이 따라야하는 승부인 만큼 축구팬과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지 않도록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시원한 승전보를 안겨줬으면 한다. 만약 승부차기를 한다면 웃는 쪽은 언제나 '태극전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