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최주희 대표가 지난 12일 K-볼 서비스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티빙 제공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올해부터 3년간 KBO리그 유무선 독점 중계방송권을 획득한 CJ ENM의 티빙은 시범경기 첫 날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실무진을 구성했나 싶을 정도의 자막 등 미숙한 운영으로 인해 야구 팬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야구 미디어는 일제히 티빙을 비난했다.
대조적으로 OTT 경쟁사인 쿠팡플레이(쿠팡)가 '2024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야구팬들은 티빙과 쿠팡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중계를 통해 OTT 시장에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청사진을 그렸을 티빙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KBO리그 정규시즌 개막을 불과 사흘 앞두고 있는 가운데 티빙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프로축구 K리그에서 쿠팡의 성공 비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쿠팡과 2022~2025년 4년간 K리그 유무선 중계 계약을 체결하면서 첫 해인 2022년은 비독점으로 쿠팡이 네이버와 같이 중계를 하면서 축구 컨텐츠를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그리고 쿠팡은 이듬해인 2023년 유무선 독점 중계를 시작했고 한 해 동안 유료화의 저항을 이겨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4년 KBO리그의 중계권료가 990억원(TV 540억원, 유무선 450억원)인 데에 반해 K리그는 150억원(추정) 수준이다. 쿠팡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중계권료(50억원 추정)를 지불한 대신에 과감한 컨텐츠 투자를 통해 팬들의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라운드별로 선정되는 쿠플픽 매치는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차별화된 게스트 캐스팅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프로축구연맹의 적극적인 지원은 쿠팡의 성공에 버팀목이 됐다. 프로축구 중계 경험이 일천했던 쿠팡은 첫 해에 어설픈 운영이 있었으나 연맹은 뒷짐지지 않고 쿠팡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연맹은 2020년 K리그 미디어센터 설립을 통해 중계 방송 영상 송수신 시스템을 구축했고, 2021년 KT 계열 스카이스포츠에 지분을 투자해 K리그 주관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작업들을 거치면서 연맹은 쿠팡의 연착륙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지난 12일 K-볼 서비스 설명회에서 발표하는 티빙 전택수 CPO. /사진=티빙 제공
티빙은 파격적인 입찰금액을 써내면서 중계권을 획득했지만 정작 중요한 컨텐츠 투자 움직임은 아직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쿠팡의 쿠플픽에 견줄 만한 '티빙 슈퍼매치'를 준비했지만 야구 현장에 맞지 않는 계획으로 시작도 못하고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시범경기 때 보여준 중계진 구성도 쿠팡의 MLB 서울시리즈에 비하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티빙이 정규시즌에 들어가 쿠팡 못지않게 과감한 콘텐츠 투자를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통해서만이 야구팬들이 티빙의 노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고 유료화 역시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다.
만약 티빙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거나 팬들의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5월 1일 예정인 유료화는 유보하는 게 맞다. 티빙은 유무선 독점 중계만으로도 이미 경쟁사 대비 우월한 위치를 확보해 자사 이용자 수 증가의 여건이 마련돼 있다. 유료화까지는 정규시즌 개막 후 약 5주간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데 최소한 4월 중순까지는 야구팬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료화는 미루는 게 현명하다.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후폭풍은 시범경기 이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티빙에는 프로야구 팬덤과 야구계 정서를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COO(최고운영책임자)급 인사가 필요하다. 중계는 외주를 줄 수 있고 실무진 역시 외부에서 충원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기존 티빙에서 그린 청사진을 현장감 있게 새로 구성할 수 있는 야구 전문가가 내부에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 역시 티빙에 투자 여력이 있어야 한다.
/사진=티빙 제공
프로스포츠는 미디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콘텐츠 산업이다. 따라서 구단 입장에서는 미디어를 스폰서 이상의 파트너이자 VVIP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유료화는 시대적 흐름이므로 티빙의 도전이 성공하면 프로야구 산업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티빙과 같은 CJ E&M 계열이었던 XTM은 2012년부터 3년간 프로야구 중계를 했다. 당시 XTM은 의욕적으로 나섰으나 2014년을 끝으로 프로야구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과연 티빙의 도전은 쿠팡만큼 성공할까, 아니면 XTM처럼 사라질까. 앞으로 3년이 티빙과 프로야구에 모두 중요한 시간이다.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정리=신화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