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다음, 소희'들을 위해 [김나연의 사선]

김나연 기자  |  2023.02.04 10:00

편집자주 | 영화를 보는 김나연 기자의 사적인 시선.

사진=영화 스틸컷 사진=영화 스틸컷
잔잔한 호숫가에 돌이 하나 둘 던져지고, 큰 파문이 인다. 멀게만 느껴지던 이야기는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무심한 표정의 인물이 분노할 때 무채색이던 이야기에 강렬한 색이 덧씌워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반복될 다음, 그 다음 소희들을 위한 영화 '다음 소희'다.


전주에서 일어난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음 소희'는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고, 때로는 친구를 위하던 평범한 고등학생 소희는 대기업으로 포장된 콜센터에서 취직한 뒤 점차 말을 잃어간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기계적인 말이 가슴 답답하게 느껴지고, 소희가 어떤 표정을 짓든 위태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빛나던 소희는, 점차 어둠에 잠식된다.

그 어디에도 속시원하게 마음 터놓을 공간이 없고, 위태로운 평행선을 달리던 소희는 결국 스스로 생을 접는다. 형사이자 소희와 잠시 스친 적이 있는 유진(배두나 분)은 이 고독한 죽음을 도무지 쉽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소희의 흔적을 되짚기 시작한다.

사진=영화 포스터 사진=영화 포스터
'다음 소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진듯한 구성이다. 1부에서는 지독한 현실을 겪은 소희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진다. 과장이 없기에 더 묵직하고, 현실이기에 더 지독하다. 배두나의 등장은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답답하지만, 다소 멀리서 소희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듯하던 관객들은 배두나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야기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유진은 관객들을 대신해 분노하고, 소리치고, 또 가슴 친다. 어딘가 텅 빈 듯한 무심한 눈빛으로 등장한 유진이 주먹을 휘두르게 될 때 관객들의 가슴에도 큰 파동이 일고, 그 의미가 오롯이 와 닿는다. 소희의 이야기를 되짚어가는 유진이지만, 그 이전의 소희, 다음의 소희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다음 소희'를 통해 장편 영화로 데뷔한 김시은은 밝은 여고생에서부터 점차 빛을 잃어가며 고립되기까지 극과 극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표현하며 몰입을 이끌었다. 관객들을 대변하는 듯 사건을 파헤치고, 분노하며 깊은 울림을 안기는 배두나는 역시나다. 극의 중간 지점부터 등장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중심을 완벽하게 잡는다.

정주리 감독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늦었지만 제가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일을 알고, 그전에 있었던 일,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알아가면서 어쩌면 저도 그 일을 반복하게 된 사회 전체의 일원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다음 소희'라는 제목은 그다음이 영원히 반복돼야 하는 건지 묻는 저의 질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나왔어야 할, 그러면서도 다시는 세상이 나오면 안 될 '다음 소희'는 오는 2월 8일 개봉한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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