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수·김갑수·왕빛나…사극엔 역시 악역이 뜬다

김태은 기자  |  2006.12.06 15:47


뇌리에 각인되는 강렬한 카리스마 때문일까, 악역이기에 내뿜을 수밖에 없는 독기와 솔직한 야심과 질투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일까. 주인공보다 더 주목받는 악역이 뜨고 있다.


특히 사극에서는 그 연기의 폭이 더 자유롭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할 경우 자칫 과장된 연기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극의 연기톤이 현대극보다는 극적인데다가, 출연인물이 다채로운 만큼 악역이 활개칠 수 있는 폭도 넓다.

그 때문인지 SBS '연개소문'에서는 수양제(김갑수 분)가, MBC '주몽'에서는 대소왕자(김승수 분), KBS2 '황진이'에서는 부용(왕빛나 분)이 주인공보다 때론 더 부각되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연개소문' 폭군 수양제의 광기

100부작의 전반기에서 54부까지 젊은시절의 연개소문 역을 맡은 이태곤보다는 수양제 역의 김갑수가 드라마의 중심을 잡고 있는 형태다. 진시황과 더불어 시대의 폭군으로 불린 수양제. 눈썹까지 치켜올린 분장을 한 김갑수의 광기어린 연기가 시청자를 빠져들게 한다.


연극으로 시작해 연기 잘하기로 공인된 김갑수는 부왕마저 독살하고 제위에 오른 만큼 잔인하고 흉폭한 수양제를 다소 우둔하면서도 공격적인 캐릭터로 그려내고 있다. 첩 오강선(이재은 분)을 항상 옆에 끼고 등장하는 수양제의 명연기에 "수양제 때문에 '연개소문'을 본다", "수양제가 나와야 재밌다"는 팬들도 늘어나고 있다.

작가조차도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고 있는 김갑수에게 기울어지고 있는지 그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위대한 불멸의 수양제'로 제목을 바꿔야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흘러나온다. "전쟁도 고구려 중심이 아니라 수양제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 "연개소문은 중국사대주의자로 폄하시키고, 수양제 들러리로밖에 보이지 않게 그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몽' 대소왕자의 꽉찬 내면연기


'주몽'의 타이틀롤을 맡은 송일국 역시 KBS2 '해신'에서 악역 염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지만, 경쟁자 대소 역의 김승수가 오히려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당초 주몽이 철부지로 그려지며 여타 인물들이 부각돼 "'주몽'의 처음에는 해모수, 금와, 유화만 있었고, 지금은 금와, 대소, 소서노만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주몽의 캐릭터도 무너지고 성장속도도 더딘데다가 '주몽'이 연장되며 고구려 건국 시기 역시 계속 늦어지면서 오히려 연기 잘하는 김승수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타이틀을 '부여의 대소왕자'로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부터 이글거리는 눈빛 연기, 절제된 눈빛 연기, 안정적인 내면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주몽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백성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폭군으로 자란 대소를 연기하는 김승수의 완벽한 감정이입에 함께 빠져들게 됐다는 것이다.

'황진이' 부용의 발군의 악녀 연기

기생 부용은 천재 모차르트를 질시하는 살리에리와 같은 역이다. '황진이'의 중심은 단연 타이틀롤을 맡은 하지원이겠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쪽은 부용 역의 왕빛나가 될 공산이 크다. 시청자들은 천상의 여인처럼 아예 자신과는 무관한 존재이거나 자기보다 못하거나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캐릭터에 끌리기 마련이다.

이영애나 황수정은 사극 속에서 한없이 지고지순한 역을 연기했으나 하지원은 조선시대의 천민계급인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도도하고 거만한 모습을 보여 열렬팬과 안티팬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부용 역의 왕빛나는 동정과 연민을 받고 있다.

SBS '여인천하'와 '토지'에서 악녀 연기를 통해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인지도를 확실히 한 도지원의 경우와 비교될 수 있겠다. 시청자들은 "여자로서 질투하는 모습, 당당하게 다시 경쟁을 하겠다는 모습 등 왕빛나의 연기가 멋진 것 같다", "오히려 황진이보다 인상적이다"며 '부용없는 '황진이'는 팥고물 빠진 찐빵'이라는 극찬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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