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록 "관객이 영화 만날 기회 잃어가고 있다"

전형화 기자  |  2007.04.18 13:44
ⓒ<임성균 tjsrbs23@> ⓒ<임성균 tjsrbs23@>
오광록은 시인이다. 또 배우다. 그는 매니저를 '길동무'로, 아들을 '소년 친구'라 부른다.

젊은 시절 그는 연극을 두 편 정도 하고, 배낭을 싸서 산으로 들로 시를 쓰러 다녔다. 4달 여 열심히 연극을 하고 난 뒤 출연료를 담은 봉투에 달랑 만원이 들어 있을 때 다른 배우들과 돈을 모아 술판을 즐겼다.


그런 그였기에 '소년 친구'에게 좋은 친구는 될지언정 좋은 아빠, 좋은 가장은 되지 못했다.

오광록에게 '파란 자전거'(감독 권용국ㆍ제작 프라임엔터테인먼트)는 그래서 어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영화이다.


오광록은 이 영화에서 손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의 닫힌 가슴을 열기 위해 소년처럼 순수했어야 하는 아버지를 그렸다. 그동안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희화화됐던 모습은 간 데 없다.

"때때로 작품 속에서 내 모습이 지겨워 보일 때가 있죠. 잘못된 관습 같은 데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이 작품은 언 강에 봄이 오면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시냇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런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불편한 손을 화면에 들이대고 있지 않다는 게 좋죠."


친구들의 놀림에 학교 가기 싫어하는 11살 난 아이와 장애 때문에 결혼을 피하려는 28살 청년의 아버지를 동시에 연기해야 했지만 오광록에게 어려움은 딱히 없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지금까지 노동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둔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작품 속에서 소통이 덜 되면 화면에 찌꺼기처럼 얼룩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죠.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처럼. 하지만 이 작품은 달라요. 난 소년친구와 오래 떨어져 있어서 동무같은 사랑을 많이 주지 못했어요. 그 응어리진 짙은 사랑이 이 영화에 녹아있죠. 아빠의 마음을 내 소년 친구에게 보내는..."

'파란 자전거'에 이처럼 많은 애정을 쏟았기에 오광록에게 이 영화가 불과 22개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그는 봄날의 시냇가를 찾듯 극장에서 이 영화를 사람들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200개, 300개 정도 스크린을 잡는 메이저 영화에 비해 불과 10분의 1정도 밖에 스크린을 잡지 못했죠. 사람들이 영화를 만날 기회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오광록은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최근에는 CF도 찍었다. 배용준 문소리 등과 블록버스터 드라마 '태왕사신기'에도 출연한다. 이제 먹고살기에 어려움이 없을 법도 하지만 오광록은 여전히 보증금 1000만원에 30만원 짜리 월세에 산다.

여전히 마이너스 인생이지만 오광록은 나누는 즐거움이 생겼다고 말한다.

"산동네에 살지만 너무나 좋은 집주인을 만나 옷방도 있고 글쓰는 공간도 있어요. 몇 년이 지나도 월세를 올려달라는 소리도 없고, 월세가 밀려도 전화도 없었죠. 낙산 산동네 점촌 아주머니는 6개월째 밥값을 밀려도 받을 생각을 안했고요. 연극무대에서 굶어 죽지 않고 살수 있었던 것은 도와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는 내가 나눠줄 차례죠. 물론 마이너스 인생을 산다는 건 고된 노동이지만."

오광록의 트레이드 마크인 느릿하면서도 명징한 말투는 '파란 자전거'에서도 여전하다. 가래가 들끓어도 또렷한 그의 말투는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뻔한 연기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오광록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특유의 말투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투가 역할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는 게 문제라고 되답는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그 풍경에 그 사람의 삶이 투영되듯이 연기도 마찬가지죠. 변신이라는 말도 좋아 하지 않지만 아무리 다른 연기를 펼쳐도 배우의 삶은 녹아있기 마련이죠."

'태왕사신기'를 찍고 스릴러 영화에도 출연이 예고돼 있고, 올 가을에도 오광록의 삶은 바쁘기만 하다. 매년 가을이면 시가 가득 담긴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 시집을 만들어야지 생각하지만 올해도 계획은 계획으로 남을 것 같다.

"시는 꾸며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치장해도 내 속에서 녹아있는 게 나오지 않는다면 위험한 것이죠. 삶이 좀 더 신비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시집을 엮고 싶지만 어느새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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