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개막작 '오프로드', 막장인생들의 가련한 외침

전주(전북)=김경욱 기자,   |  2007.04.27 10:34
왼쪽부터 영화 \'오프로드\'의 한승룡 감독, 지수역의 선우선, 철구 역의 백수장 왼쪽부터 영화 '오프로드'의 한승룡 감독, 지수역의 선우선, 철구 역의 백수장


자신에게 5억원이라는 거액이 불쑥 통장으로 입금됐다는 상상을 해보자.

너무 많다고? 소박하시기는…. 그럼 그 절반인 2억5000천만원 정도라면?


이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즐겁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돈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애꿎은 '머리통'을 탓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 돈을 어떻게 써야겠다고는 잘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26일 공개된 영화 '오프로드'는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출발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상상처럼 불쑥 자신의 손 안으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사건은 우연히 권총을 손에 쥔 철구가 은행에 침입, 성공적인 '한 건'을 통해 장밋빛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는 '순진하게' 매회 로또 복권을 사는 수고로움 대신 이 '한방'으로 인생역전을 꿈꾼다.

철구는 은행에서 돈을 탈취하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뒤 은행 앞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택시기사 상훈의 차에 오르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상훈은 직장 상사의 지시로 불법대출에 가담했다 옥살이까지 하고 나와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사가 된 인물.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주희의 미래를 위해 이별을 고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주희는 상훈에게 마지막 제안을 한다.

그러나 둘의 계획은 철구의 등장으로 뒤틀리고 상훈은 은행 강도인 철구의 인질이 돼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는 두 사람이 서울에서 목포까지 향하는 길에 일어나는 일들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로드무비라는 장르가 던져주는 잔잔하거나 덤덤한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이 영화의 매력이다.

상훈과 철구가 하나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창녀 지수를 만나게 되고, 이는 사건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인생 막장에 놓인 세 사람이 은행에서 탈취한 돈을 두고 각자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오직 돈만이 장밋빛 나날을 보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비루한 현실임에는 가슴이 아려온다.

"이번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승룡 감독은 말했지만 '오프로드'는 그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좌절에 더욱 무게를 둔다.

영화 속 호남의 풍광과 색감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본으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내몰린 막장 인생들의 외침이 아련하게 가슴 한 켠에 울려퍼진다. 상훈이 총에 맞은 철구에게 던진 한 마디 말처럼.

"너무 큰 상처를 입으면 당장은 괜찮은 것 같지만 서서히 고통이 오더라. 참을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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