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2007.06.15 11:53


"그래서 그런 말이 있는 거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야된다는 것. 원래 사채 바닥이 개처럼 버는 데인데, (할머니는) 정승처럼 쓰셔야 하는데 개처럼 쓰셨네.."


SBS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 박신양이 한 말이다. 지난 14일 방송에서 옛 애인 이차연(김정화)이 금나라에게 고백했다. "(박신양) 어머니가 수술을 제 시간에 못받은 것은 우리 할머니(봉여사) 때문이었다"고. 이에 박신양이 사채업계 큰손인 봉여사(여운계)에게 저주를 담아 폭언을 퍼부은 것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야된다'는 말은, 특히나 그놈의 사채 빚 덕분에 아버지 어머니 다 잃고 악덕 사채업자가 된 금나라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일단 '멋지다'. 망나니처럼 돌아다니는 금나라에게도 아직은 뭔가 양심과 상식과 미래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더욱이 이 말을 한 배우가 누구인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고밀도의 연기력을 입증한 박신양 아닌가.


우선 금나라는 자기의 밥벌이 상황을 '개처럼 번다'고 규정했다. 아버지를 죽게 한 원수 마동포(이원종) 사무실에 빌붙어 채무자에게 못할 짓 다 하고 다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자신도 다 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확한' 주제파악은 이차연은 물론 서주희(박진희) 독고철(신구) 등 주변 인물들이 금나라를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금나라는 또한 '정승처럼 써야된다'는 놀라운 도덕관념도 밝혔다. 봉여사나 자기나 아무리 '개처럼' 돈 버는 사채업자이지만, 돈을 쓸 때만큼은 '정승처럼' 옳고 좋고 이타적인 일에 올인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더욱이 '쓰라'도 아니고 '써야된다'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금나라는 돈 쓰는 일에는 더욱 엄격한 자기통제와 도덕률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멋지게만 들리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은 금나라만의 착각이다. 또한 '쩐의 전쟁'이 교묘하게 퍼트리는 이데올로기의 하나일 뿐이다. 더욱이 '개'의 의미가 '천하지만 열심히, 음지에서, 몸에 병이 나도록'의 의미가 아니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망나니 같은'의 의미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쩐의 전쟁'이 묘사하는 사채업자와 금나라의 밥벌이는 역시 후자쪽에 가깝다.

무엇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진작에 용도폐기됐어야 할 아주 위험한 논리가 숨어있다. 목적만 선하고 아름답다면 수단은 악하고 추해도 용서가 된다는. 금나라가 비록 지금은 악한 수단으로 돈을 모으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만, 언젠가는 악한 자 응징하고 상처받은 자 보듬어줄 거라는 그런 철없는 믿음.

이같은 착각은 사실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를 극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못된 자 처벌하는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갖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자다. '우아한 세계'의 조폭 송강호가 제 아무리 유학 보낸 아들 위해 험한 삶 사는 아버지일 뿐이라 해도, 그는 그래봤자 남 등쳐먹는 사회악 조폭일 뿐이다.

마동포의 비밀 금고를 마치 무슨 홍길동 마냥 제집처럼 넘나들고 50억 돈다발 앞에서 춤까지 추는 금나라. 자기가 얼마나 개처럼 버는지, 이차연에게 보여주면 그걸로 지금까지 저지른 죄와 죄의식마저 깔끔히 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또한 앞으로 혹시라도 자기가 정승처럼 돈을 쓴다면 지금까지 잘못은 용서가 된다고 믿나. 사람 개 패듯이 죽여놓고 돈 쓸어모아 감옥 갔다온 조폭이 훗날 자선사업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금나라는 봉여사가 "정승처럼 썼어야 했는데 개처럼 썼다"고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렇게 분노할 필요도 없다. 당신도 개처럼 벌면 그냥 개처럼 쓸 뿐이다. 또한 "개처럼 벌어놓고 정승처럼 쓰겠다"는 건, 정승처럼은 아니더라도 짐승처럼 돈을 벌지는 않는 대다수 선량한 시청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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