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를 필두로 연극배우 윤석화까지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리플리 증후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리플리는 1955년 발표된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이다. 20대 중반의 고아로 절도와 남 흉내내기가 특기인데 자신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부잣집 아들 디키를 데려오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다. 디키의 생활을 부러워하던 리플리는 그를 살해하고 그로 위장한 삶을 살아간다.
60년에는 프랑스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아 '태양은 가득히'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됐고, 99년 하버드대 출신의 맷 데이먼이 원제와 같은 타이틀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내용이다.
가상의 인물인 리플리가 정신병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20세기 후반부터. 리플리 증후군이 공식 인정받은 병명은 아니지만 실제 이러한 사례를 보이는 환자들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신정아씨의 가짜 박사학위 소동을 보도하면서 '재능있는 신씨(The Talented Ms. Shin)'라고 지칭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러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은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자신이 구축한 가공의 세계를 진짜라고 믿어버리고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엄연한 증거가 있음에도 학력위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뉴욕으로 '도피'한 신정아씨는 정말 자신이 만든 이력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리플리 증후군'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위조 사실을 자인하긴 했지만 윤석화가 지난 2005년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배경을 늘어놓고 있는 것 보면 스스로 '리플리 효과'를 누려왔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배우들이 '윤석화 네가 연극에 대해 뭘 알아'하면 저는 속으로 '너네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 했다", "(이대 생활미술과에 진학 후) 대학 가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았으나 다들 미팅하고 땡땡이 칠 궁리만 하고 공부를 소홀히 해 대학이 재미없어져, 그때부터 오로지 유학만 생각했다" 등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스토리가 그렇다.
동숭아트센터 김옥랑씨, 영어강사 이지영씨,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씨, 만화가 이현세씨 등 자신의 학력을 적극적이든 그렇지 않든 꾸며온 이들은 학력·학벌 위주 사회풍토에서 실제적으로든 인식적으로든 이득을 얻어왔다. 이현세 화백이 한 "(고졸인데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나왔다고 하니) 독자는 아니지만, 만화평론가, 기자들 평가에서는 좀 받았을 수도 있겠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해서 스토리가 탄탄하다' 이런 말 나오면 그렇게 찔릴 수가 없더라"는 고백이 그렇다.
실제 실력보다 학력위주로 사람을 구분하는 풍토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일종의 '사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프랭크 애비그네일에게서 볼 수 있듯이 어느정도 '기회'가 됐음은 분명하다. 그는 교복이 아니라 파일럿 제복을 입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선망을 적극 이용했다.
대학, 혹은 유학이 가지는 '간판'의 프리미엄과 지적 권위의 덕을 완전히 보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위조를 통해) 누린 것, 벌어들인 것을 환원하라"는 일부 네티즌의 분노의 찬 목소리나 실망감, 배신감, 상대적 박탈감을 담은 원성이 터져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