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들국화' 전인권, 영욕의 30년

김원겸 기자  |  2007.08.30 12:01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를 받고 필리핀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가수 전인권이 29일 귀국길에 경찰에 검거됐다.

메마른 듯 거친 목소리로 터트려내는 가창력이 일품인 전인권은 록가수로서는 후배가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대중에는 추억을 줬지만, '인간 전인권'으로서는 영예롭지 못한 일들을 겪어왔다.


1979년 따로 또 같이 멤버로 데뷔한 전인권은 국내 록밴드의 전설로 꼽히는 '들국화'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1985년 발표된 들국화 1집은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등은 당시 한국 대중가요를 한계를 무너뜨렸고, 대다수 수록곡들이 히트를 치면서 '전설'이 됐다.

들국화의 1집은 최근 경향신문이 대중 음악 전문 매체와 함께 음악평론가, 기자, 방송사 PD 등 국내 대중 음악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한국 대중 음악 100대 명반' 에서 1위에 선정됐을 정도다.


1998년 발표한 첫 솔로앨범은 그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반이었다. '돌고돌고돌고' '돛배를 찾아서' '사랑한 후에'는 여전히 그를 '전설'로 남아 있게 했다. 더부룩한 사자머리에 콧수염, 선글래스를 낀 그가 노래하면 관객은 열광했고, 감동에 절었다.

하지만 그는 1987년 9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 '마약류'와 악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 시절만 해도 저항하는 록가수들의 용감한 행동 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992년에도 같은 혐의로 5개월 간 수감 생활을 하면서 그에게 서서히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이후 199년과 1999년엔 결국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각각 3개월과 9개월 간의 징역을 선고 받았다.


긴 공백을 가졌던 전인권은 그러나 2003년 3집을 발표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대중은 그의 품행은 좋게 평가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노래는 사랑받았다. 특히 위성채널 스카이라이프 CF와 방송 등을 통해 친근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에게 다시 다가갔다.

그러나 대중은 이듬해 배우 이은주의 자살사고를 겪게 되면서 전인권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랑에 국경도 나이도 없고, 당사자들의 문제지만 그는 "이은주를 사랑했다. 우리는 사랑했다"라는 말은 대중의 심리를 어지럽게 했다.

전인권이 그 말을 하게 된 경위가 어떻든, 그들이 정말 진실한 사랑을 했더라도, 전인권의 '사랑했다'는 말은 '고인을 위해서라도 가슴 속에 묻어야 할 말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전인권은 그 즈음 자서전을 냈고, 또 앨범(4집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을 내고 콘서트를 했다. 대박은 나지 않았지만, 그의 팬들은 공연장에서 또 그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이번 마약류 투약사건으로 또 다시 전인권은 '마약'이라는 굴레를 쓰게 됐다. 본인의 말처럼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이 되더라도 대중은 그의 말에 좀처럼 동의를 해줄 것 같지는 않다.

강원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따르면 전인권은 지난해 전국의 22개 병ㆍ의원을 수십 차례 방문, 922일분의 마약류 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아 복용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나눠줘 복용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중은 전인권을 사회뉴스가 아닌 대중문화 뉴스에서 접하고 싶고, 또 그의 목소리를 경찰진술이 아닌 노래로 듣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졌어도, 건강한 모습으로 또 호소력 짙은 가창력으로 노래하는 '가수 전인권'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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