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
하지만 사랑이 스크린과 TV 속에 투영될 때, 그것은 이미 판타지가 된다. 그 속에서 모든 사랑과 이별은 지상 최대의 아름다움이자 환상이다.
자칫 영화와 드라마가 가장 현실적인 사랑을 온전하게 비출 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를 비난한다. '통속적이며 신파'라고. 현실로 돌아와 내 곁의 사랑을 지켜볼 때 그것이야말로 이미 통속적이며 신파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말이다.
여기 두 편의 멜로영화가 있다.
'사랑'과 '행복'. 제목에서부터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명료하게 그 메시지를 드러내는 영화들이다.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 내던질 만큼 한 여자를 사랑한, 거칠고 순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행복'
전자는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후자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다.
주진모와 박시연이 한 남자의 뜨거운 사랑을 스크린에 구체화하고, 임수정과 황정민이 아픈 몸을 이끌며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랑'하면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지며 이 시대 통속과 신파의 현실적인 사랑을 더욱 가슴 아픈 무엇으로 기억하게 한다.
이 가을, 사랑하자.
# 멜로영화-판타지와 현실의 경계
'사랑'에서 주진모는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가슴 속에 자리한 여자 박시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때로는 거칠고 또 때로는 험악하지만 그래서 더욱 순수해보이는 인물은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여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이 만큼 직접적이며 또 그래서 그 만큼 강렬한 것이 있을까.
'사랑'은 바로 그런 이유로 판타지가 된다. '영화=판타지'라는 등식이 있다면 '사랑'은 딱 그런 경우일 터이다.
영화 '사랑'
언제 찾아올 지 모를 죽음 앞에서 '지금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여자 임수정은 "동병상련"의 남자 황정민이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이다. 조금씩 사랑에 빠져드는 두 남녀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사랑하지만 사랑은 또 그렇게 예의 배신하는 것.
현실적 욕망을 따라나선 남자를 떠나보내며 짐짓 냉정한 체 하지만 여자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운다. 그런 여자를 홀로 남겨둔 채 떠나가는 남자의 마음이라고 편할까.
영화는 이 같은, '현실'과 '통속'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더욱 짠하게 와닿는, 우리 일상의 대사와 풍경들로 인해 마치 관객들 자신들의 사랑인 양 다가온다.
# 스타 감독, 그 특장을 구현하다
곽경택 감독은 '친구' 이후 '챔피언'과 '똥개' 그리고 '태풍'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하지만 관객은 '친구' 만큼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진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려온 그는 "사랑은 불처럼 감성을 터치하지만 그것을 지키려면 얼음 같은 이성이 필요하다"면서 "이성과 현실 때문에 정말 끝까지 가보지 못하는, 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이런 사랑하며 살고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곽경택 감독은 '친구'에서처럼 관객들의 저 밑바닥에 침잠한 하지만 건드리면 언젠가 터질 듯한 태세가 된 정서를 후벼파는 재주를 지녔다.
'사랑'은 그의 말대로 "한 번쯤은 이런 사랑을 하다 죽으면 좋"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감독의 그 같은 재주를 온전하게 스크린에 투영한다. '저렇게 사랑하는 놈이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사랑을 하다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그가 나'일 수는 없어서, 이야기는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영화 '행복'
멜로영화가 아니고서는 세상에 할 말이 없다는 듯 허진호 감독은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그리고 '외출'을 통해 다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 사랑을 그려냈던 허진호 감독은 이번엔 한 발 더 나아간 듯 보인다.
결코 자신들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던 허진호 감독의 인물들은 '행복'에 와서 큰 울음을 터뜨리고 때로 욕설까지 내뱉는다. 그래서 더욱 인물들의 사랑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래도 여기에 힘을 더하는 것은 역시나 감독 특유의 절제되고 건조한 듯 보이지만, 결국 담담한 일상의 묘사처럼 보이는 디테일과 함축적인 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