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가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그리고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몇몇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난 뒤 얼마가지 않아 극장에서 간판을 내려야 했다. 늘 그렇듯이, 극장은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관객들은 가만 있지 않았다. 이들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일종의 '캠페인'을 펼쳤고 이는 작품들의 제목 앞글자를 따 '와라나고 운동'으로 명명됐다.
이 같은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들 영화들은 각각 재개봉 혹은 연장상영의 방식으로 관객을 다시 만났다. 아예 네 작품이 한 자리에서 상영되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또 제작사들은 상영극장 임대 등의 방식으로 '영화 살리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 2주 만에 종영되자 관객은 팬카페를 개설하며 재상영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2007년 여름, 관객들이 다시 나섰다. 관객들의 힘이 극장과 일부 배급사의 와이드릴리스 배급 및 상영 방식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리고 관객들의 이 같은 힘은 관람문화를 바꾸려는 작은 시도로 보인다.
이번엔 공포영화 '기담'(사진)과 '리턴' 등이 관객들의 응원을 받았다. 관객들은 이들 영화가 상영관에 제대로 걸리지 못하자 '영화 제작사, 배급사가 영화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요구하고 볼 수 있길 바란다'고 외쳤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네티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금세라도 간판을 내릴 것 같았던 '기담'의 경우, 관객들의 이 같은 응원에 힘입어 이후 상영관을 추가하고 멀티플렉스 CJ CGV 체인을 활용한 재상영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기담'은 결국 18일 종영됐다.
'기담'의 제작사인 영화사 도로시는 이날 간략한 보도자료를 통해 담담하게 종영을 맞는 소회를 전했다. 도로시측은 전국 67만8498명의 관객 동원 수치를 공개하며 관객들의 "변치않는 응원"에 감사해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영화라는 문화상품의 소비자인 관객들이 벌이는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라 불릴 만하다.
그 동안 극장에 내걸린 영화 가운데 일정한 대가를 내고 한 작품을 골라 관람하는 관습적인 관람문화를 이제는 조금씩 바꿔보자는 캠페인이 관객들 사이에 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보고 싶은, 작품성 높은 작품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욕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그 범위와 파장은 광범위하고 강하지 않다. 거대 흥행작 위주의 영화를 내걸려는 극장의 욕구와 많은 영화 라인업을 소화해내야 하는 배급사 입장이 맞물리는 '와이드릴리스' 유통방식은 여전히 꿈적할 기세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자체로 이 같은 '관객 소비자 운동'은 유의미하다. 그리고 크게 봐서 이 같은 캠페인은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이제 관객 스스로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를 그것도 제대로 된 유통구조 안에서 소비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이 같은 요구와 움직임이 이후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