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궁녀'
임금과 양반으로 구성되는 지배층의 이야기 속에는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사랑과 욕정의 이야기가 있었다. 민초들의 이야기는 원한과 복수와 또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스토리에 집중됐다.
이제 영화와 드라마가 궁녀와 내시라는, 또 다른 계층에 그 카메라의 초점을 들이대고 있다.
임금과 양반 그리고 민초들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극적인 소재로 한동안 카메라 뷰파인더 밖에 서 있던 궁녀와 내시가 스토리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많은 영화와 사극 속에서 궁녀와 내시는 그저 임금 혹은 왕비와 후궁들의 곁을 맴도는 주변부의 인물에 불과했다. 궁궐과 역사의 '정사'와 '야사'가 뒤얽혀 스토리를 구성하는 사극 속에서, 실제로 그 '정사'와 '야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목격했던 이들에게 카메라가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은 또 다른 흥미로 다가온다.
그들의 시선과 그들이 온몸으로 겪어내는 역사 속 진실과 허구의 세계는 사극적 소재로서 얼마든지 극화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궁녀'(감독 김미정ㆍ제작 영화사 아침)와 SBS 드라마 '왕과나'(극본 유동윤ㆍ연출 김재형)는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궁녀'는 개봉 첫날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왕과 나' 역시 시청률 20~30%대로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SBS 드라마 '왕과 나'
연출자인 김미정 감독은 "기록에서도 잊혀졌던 사람들, 가혹한 현실 안에서 살아가면서 현실에 저항했던 궁녀들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는 이어 "그들의 이야기가 묻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궁녀라는 신분과 계급이 가져다주는 시대적 억압과 굴레 그리고 그 가혹한 현실에서 "그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SBS 드라마 '왕과 나'는 조선시대 한 시대를 살며 여러 명의 왕을 보좌한 환관 김처선(오만석)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드라마는 사극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허구와 창작의 힘으로 그 동안 감춰져온, 내시라는 신분을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주인공 김처선과 폐비 윤씨(구혜선)의 사랑을 넘어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시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제작진은 "기존의 역사적 기록과 정치 사건 중심의 정형화한 사극에서 탈피해 그 기록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물론 권력을 둘러싼 갖은 음모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지만 내시라는, 세상에 존재한 인간군상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임금과 양반에 가려졌던, 주변부의 인물들이 이젠 새로운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