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쪽부터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 MBC드라마넷 '별순검', KBS 2TV '한성별곡'
"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시청률이 다 낮은거야."
회사원 이모씨(29)는 푸념했다. 그가 즐겨보는 드라마마다 시청률에서 죽을 쑤다시피 하는 탓이다. KBS 2TV 8부작 퓨전사극 '한성별곡', MBC 미니시리즈 '메리대구 공방전' 등 최근 그가 숨죽이며 지켜본 드라마마다 10% 문턱에도 못미치는 시청률을 보였다. 최근엔 사극 열풍에 기가 질려 KBS 2TV '얼렁뚱땅 흥신소'를 신나게 보기 시작했는데, 시청률이 3% 대란다.
돌이켜보면 한두해 째가 아니다. KBS '거짓말'을 필두로 MBC '네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 KBS '바보같은 사랑'과 '굿바이 솔로' 등등. 스타 하나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방송사 하나를 고집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모양이다. 이씨는 축구중계만 보면 한국대표팀이 지는 축구팬 마냥 '좋아하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내가 TV 앞을 떠나야 하나' 고민이 된다.
TV 시청층이 40∼50대의 중장년층으로 옮겨가면서 이씨와 같은 증세를 토로하는 젊은 시청자가 늘어가고 있다. 네티즌의 요구를 바탕으로 드라마별 게시판을 마련하는 디씨인사이드에도 이같은 푸념이 종종 올라온다. '태왕사신기', '로비스트' 같은 인기 대작도 자체 게시판이 생기지만 낮은 시청률의 '메리대구 공방전',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얼렁뚱땅 흥신소' 등도 어엿한 게시판이 있다. 각 게시판을 오가며 활동하는 네티즌도 많다. 네티즌 반응과 시청률이 반드시 부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은 중장년이 선호하는 주말 사극이나 일일극, 주말극 등. MBC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 사이 '마니아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몇몇 트렌디 드라마나 낯설고 독특한 신개념 드라마들은 열띤 게시판 반응과는 별개로 시청률은 바닥을 치기 일쑤다. 이들 드라마의 마니아 팬들은 시청률로 드라마의 성패를 판단하는 일반적 경향에 대한 반감이 크다.
마니아 드라마의 시청층이 겹치는 현상에 대해 한 드라마 PD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과 '굿바이 솔로', 인정옥 작가의 '네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를 예로 들었다. 그는 "특정 작가 선호 같은 시청 패턴을 무시할 수 없다. 소수에게만 사랑받는 드라마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기획 단계부터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드라마 PD는 "젊은 시청자를 중심으로 기존 드라마와 다른 신선한 기획을 찾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며 "이들 중 상당수를 케이블과 미드가 흡수하면서 마니아 드라마의 시청률 바닥세가 더 심해졌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시청률만 기준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신선한 기획은 발을 붙이기가 어렵다"며 "인터넷 다운로드와 다시보기 등 변화에 따른 다양한 척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케이블채널 MBC드라마넷에서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 '별순검'의 예는 되짚어볼 만 하다. 2005년 10월 MBC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처음 선보인 '별순검'은 호평속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으나 시청률 부진 끝에 6회만에 종영됐다. 그러나 지난달 케이블로 옮겨 첫방송을 시작한 뒤 5회만에 케이블 대박 시청률인 3%를 넘어섰다. '조선판 CSI'로 불리는 신선한 기획과 완성도도 주요했지만 탄탄한 마니아 지지층의 호응이 컸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과연 시청률은 절대적인 성패의 기준인가? 매체에 따라 시청률 1%는 극과 극의 가치를 지닌다. DVD 판매나 부가사업, 인터넷에서의 영향력 등 드라마의 파급효과는 시청률과 비례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불륜극이나 가족극, 사극에서 벗어난 신선한 기획은 시청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작품을 평가하는 새로운 척도가 마련되고, 인식이 변화한다면 마니아 드라마팬들의 푸념이 조금 잦아들만도 하다. 시청률이 낮아도 빛나는 작품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