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배우 손병호는 낯설고도 낯익다.
그가 주는 '낯익음'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롯이 무대를 지켜온 덕분이다. 한국 연극계 명문 극단인 목화 출신으로 명연출가 오태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그는 숱한 작품들 속에서 온전한 주연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강렬한 눈빛과 개성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발성과 발음과 큰 몸짓에 힘을 더했고 손병호는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웬만한 연극 관객이라면 그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가 주는 '낯섦'은 이제 1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스크린에 얼굴을 비쳤지만 관객에게 영화 외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탓이다. 주조연의 아름답고 잘생기고 멋진 스타들의 틈바구니에서 그에게 돌아갈 스포트라이트의 몫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 시간 동안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싶다.
이미 연극 무대의 중견으로 자리잡은 1999년, 그는 '유령'으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다. 송일곤 감독의 단편영화 '소풍'에서 무서운 세상과 이별하는 30대 가장의 역할로 나타난 뒤 2001년 '파이란'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그 때부터였다. 충무로가 그를 주목한 것은. '파이란'의 '삼류' 건달 최민식의 친구이자 그의 보스였던 그는 악랄한 조폭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이후 '튜브', '효자동 이발사', '흡혈형사 나도열', '야수' 등 숱한 영화에 조연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여기에 최근 개봉해 흥행세를 달리고 있는 영화 '바르게 살자'에 이르기까지 손병호는 '엄마' 등의 영화를 제외하면 늘 성격이 강한 캐릭터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 얽힌 이야기부터 풀어갔다.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사실, 내 눈은 예쁜 '쥐눈'이다. 하지만 살짝 치켜뜨기만 해도 흰자위가 드러난다. 그래서 눈매가 남들과 달라보인다. 눈매를 감추려고 가끔 안경을 끼기도 하는데 그게 감춰지나.
그렇다고 그것이 눈 탓만이겠는가. 손병호는 자신의 오랜 무대 생활이 자신의 눈매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연극 무대는 눈으로 얘기하는 공간이다. 눈을 크게 뜨고 관객을 주시하게 된다. 그런 훈련이 되어 있다. 뭔가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직업의식 같은 거라고나 할까.
가히 20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경험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그건 집요함이기도 하다. 집중력이 요구되는 연기에 있어 집요함은 어쩌면 필수일지도 모른다.
▶'파이란' 때 최민식에 눌리지 않는 배우를 찾았나보더라. 마침 연극을 통해 알게된 송강호가 나를 제작진에 추천했고 조감독이 내게 찾아와 시나리오를 던져주곤 읽어보라고 하더라.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후 다시 와서 캐릭터 의상을 입고 다시 리딩을 해보자 했다. 그리고 출연하게 됐다.
손병호는 오래 전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지만, 연극 무대에서 영화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은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무대 위에서 날아다녔어도 카메라 앞에 딱 서니 주눅이 들더라. '유령' 때 경험은 정말 충격이었다. 감독은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그 긴장감이란. 캐릭터만 보여주면 되는데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던 거다. 혼났지, 뭐.
고교 시절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만 "이소룡을 꿈꾸고 '이기동, 배삼룡'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연기에 꿈많았던 그는 끝내 자신의 꿈을 그렇게 이뤘다.
여전히 "연기자는 우직해야" 하고 "지금 성공한 연기자는 그 우직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손병호는 또 그렇게 자신의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꿈을 향해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다.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