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날 예쁘다고 생각할 줄 몰랐다"

다음달 13일 '싸움' 개봉… "'중천' 때는 부족했던 것 같아"

전형화 기자  |  2007.11.28 08:35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드라마 '스크린'으로 대중에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낸 지 4년, 김태희에게 이제 서울대 출신 미녀스타라는 꼬리표는 사라졌다.


대신 그녀는 CF를 통해 우아함과 귀여움, 그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또 그만큼 선입견에 쌓여있다. 작품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기에 김태희는 스스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녀는 예쁘다'란 환상에만 갇혀 있었다.

그런 김태희가 변신을 시도했다. 아니 그녀는 원래 내 모습을 보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 '싸움'(감독 한지승, 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김태희는 띠동갑 선배 설경구와 한 때 부부의 연을 맺었다가 전쟁 같은 싸움을 벌이는 여인을 연기했다.


김태희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단순, 무식, 과격하다. 과연 김태희는 단순,무식,과격할까?

지난해 꼭 이맘때 김태희의 첫 영화 '중천'이 개봉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 때도 김태희는 '천인' 캐릭터가 실제 자기처럼 털털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스크린에서 그닥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편집됐기 때문이다. 원했지는 않았겠지만 연기 논란도 있었다.


1년 뒤 다시 찾은 스크린, 김태희는 "'중천' 때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선선히 말했다.

대신 마음을 비웠기 때문일까, 아무 생각 없었다는 '중천' 때와는 달리 '싸움' 개봉을 앞두고는 그 때와 마음이 또 다르다고 말한다.

"사실 좀 더 욕심이 나는게 사실이에요. '싸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내 안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구석이 많은 거에요. 원래 나와 가장 가깝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입견. 최근 김태희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그녀에 대한 선입견이 무엇인지보다는 왜 그녀에게 선입견을 가질까를 물었다. 김태희는 "내가 그것 밖에 보여주지 못했으니깐요"라고 바로 답했다.

보충하자면 김태희는 "아직 보여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과작을 한 것 같아요. CF는 완벽한 세팅이 되서 만들어진 이미지니깐요"라고 말했다. 사실 김태희도 어느 신인처럼 처음에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고민했다.

그녀는 말한다.

"처음에 사람들이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쁜 척도 해보고, 귀여운 척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제는 보여지는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요. 아마도 점점 자신이 생겨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무엇에 대한 자신감일까? 김태희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으면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까지 보여준게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때마침 찾아든 '싸움'은 김태희에게 기회가 됐다. 상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보여줬던 자신을 남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싫은 소리를 들어도 티를 안내고 화가 나도 누르는 데 익숙한 김태희지만 남자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에게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태희는 "연애할 때 양보하지도 않고 감정적이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맞아요. 어쩌면 내 감정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상대니깐 그랬겠죠"라고 한숨을 쉬었다. 친절한 김태희 같지만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코드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거리를 뒀다. 사회생활에서는 그런 일이 좀 더 많았을 법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싸움'에서 상대역인 설경구는 김태희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한지승 감독이 그녀를 어루고 달래 잘 끌고 왔다면 설경구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냥 동등한 동료로 대했다.

'중천'에서 함께 했던 정우성이 "자상한 오빠"라면 설경구는 "절친한 친구"라는 게 김태희의 표현이다.

정우성과 설경구, 김태희와 연기를 함께 한 상대역들은 하나 같이 그녀가 너무 준비를 많이 하는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희는 "자신이 없으니깐 그렇겠죠"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싸움' 촬영 중 한 일화를 소개했다.

"대본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데 정말 집에서 여러 버전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대본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잖아요. 나중에 그 장면을 찍는데 집에서 연습할 때보다 더 안나오는 거에요. 너무 속상했어요.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데 경구 오빠가 그러더라구요. 힘을 줘야하는 장면은 자기는 일부러 더 안본다고. 그렇게 비우는 거라고."

김태희에게 '싸움'은 그렇게 많은 도움을 줬다.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사진=김병관 기자 rainkimbk23@>
김태희는 변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처음에는 예쁜 척도 했고, 완벽한 여인으로 비추려고도 했다. 전작 속 캐릭터들은 다분히 그런 면이 있다. '중천'의 천인도 털털한 면이 닮았다지만 역시 하늘사람인지라 땅을 걸어도 흙이 뭍어서는 안됐다.

모범생 콤플렉스도 없지는 않았다. 주위의 당연한 기대 심리대로 걸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싸움'을 하면서 김태희는 변했다. 스타킹에 구멍이 났는데 예전이었으면 감췄겠지만 이번에는 '에이, 원래 나고 그게 영화 속 캐릭터인데'라며 그냥 쭉 발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살짝 벗어나고 싶은 청개구리 근성도 있기에 지금 모습이 마냥 행복하다.

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예전이면 상처 받아도 잊어버리고 눌러버리고 넘어갔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싸움'에서 배우면서 이제는 상처 받으면 그대로 스트레스로 남는다.

"작은 것 하나로 감정 상태가 최악이 되버리기도 해요. 상처 받으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구요. 후회할 일, 창피할 일, 이런 것들을 피하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냥 받아들여요."

김태희는 일어났을 때 자신의 키와 천장 사이의 거리를 이제는 어느정도 알게 됐다.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은 정확히 구분하게 됐다. 또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지금의 내가 못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요. 물론 그건 지금의 나죠. 일년 전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듯이, 내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김태희는 분명 1년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가장 할 수 있는 작품인 '싸움'을 만난 게 행운이라는 그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12월13일 '싸움'이 개봉되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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