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시네클릭]한국형 스릴러, 그 양날의 칼 '우리동네'

강유정 ,   |  2007.12.03 09:03


살인사건은 늘 '남의 동네'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TV 속이나 인쇄된 신문 위에나 존재하는 일이다. '화성'도 그렇고, 조디악 살인도 그렇고, 유괴사건도 그렇고, '우리 동네'의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엔 늘 그렇게 흉흉한 일들이 만연해있지만 우리 동네 만큼은 예외라고 여긴다.


영화 '우리동네'는 살인사건이 그렇게 먼 곳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첫 번째 시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학교에 등교하던 아이, 마당을 쓸던 수위 아저씨가 시체를 발견한다. 살인사건이란, 뉴스에서 볼 때난 머나먼 남의 나라 일이지만 막상 발생하면 옆구리가 서늘해질 만큼 가까워진다. 아주 먼 곳에서도 일어나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 이렇게 서늘하게 '우리'와 '동네' 그리고 '살인'이라는 개념들을 엮으면서 시작된다. 살인사건인 데다가 연쇄적이다.

대부분 연쇄사건에는 특별한 원한이나 까닭이 없다. 살인 자체에 연관성이 내재해있고 살인자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즐긴다. 따라서 일정한 패턴이 생긴다.


영화 '우리 동네'가 제공하는 패턴은 이런 방식이다.

첫 번째, 살해 대상은 여성이다. 두번 째 사체는 참혹히 훼손된 채 양 팔이 묶여 전시된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특히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시체와 시체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데 주력한다. 시체는 사건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동네'는 전형적인 한국형 스릴러이다. '우리동네'의 전형성은 살인에 대한 이유를 강박적으로 찾는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연쇄살인범이 무서운 까닭은 살인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보다 그 살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데에 있다. 단지 살인범이 정한 어떤 원칙에 부합된다는 우연성으로 이해 그들은 살해된다. 연쇄살인범은 특별한 상처나 원한없이 범행을 저지른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괴물에 가깝다.

공포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갑작스럽게 내 삶에 침범하는 폭력이 언어적 논리나 인과론으로 설명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동네'는 그 동네에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공들여 설명한다. 불교의 인연설처럼 사건은 하나하나 고리를 지어 서로 다른 인물들과 연결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연쇄살인범 효이(류덕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해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트라우마로 인해 그는 연쇄살인범이 된다.

경주(오만석)는 고등학교 때 살인을 저지른다. 아버지를 자살하게끔 만든 사채업자 때문이다. 알고 보니 경주와 효이 사이에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다.

이 사건은 형사인 재신(이선균)과도 연관되어 있다. 서로에 의지하고 있는 삼각대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물론 모든 일들은 원인과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나비효과'처럼 어떤 일들은 사소한 시작이 엄청난 결론을 불러오기도 한다. 무심히 저지른 나의 과오가 끔직한 재앙의 시작일 수도 있다.

영화 '소설보다 이상한'에 등장하는 문학평론가는 이런 말을 한다. “보험 만기일에 우연히 보험 설계사를 만나는 것이 우연이야, 갑자기 자네 집을 철거하는 일 같은 것은 우연이라고 부르지 않아”라고.

교수가 말하는 우연성은 이야기로서 영화가 가져야 할 우연의 성격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동네'의 우연은 작위적이다. 한 동네 안에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가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인과 윤리적 강박 사이의 불편한 연루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주제를 반드시 심리학적 인과관계로 설득시켜야만 하는가? 영화의 윤리성을 굳이 살인의 필연성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또한 윤리적 강박증이 영화의 건강성을 보장해줄까?

한국의 스릴러가 풀어야 할 숙제와 지금까지 쌓아온 미덕, 그 양날의 칼이 영화 '우리동네' 안에 있다.

/강유정(영화평론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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