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는 괴로워'
제작, 투자, 각 스태프, 배우 할 것 없이 모든 영화 관련 주체들은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거품 걷어내기'에 동참하는 듯 보였지만 관객과 시장은 예전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도 현재 영화계 종사자들은 올해처럼 힘겨운 상황을 피부로 절감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올해 한국영화계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월별 점유율을 통해 2007년 한국영화계와 한국영화를 되돌아본다.
# 1월=50.2%, '미녀'의 힘
지난해 12월14일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새해 들어서도 인기를 모았다. 점유율은 전년도 한국영화 점유율 63.8%에는 미치지 못하는 50.2%를 기록했지만 '미녀는 괴로워'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 점유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 화제의 외화들이 관객 동원에 나섰지만 '미녀는 괴로워'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미녀는 괴로워'는 이후 3월 초까지 상영되며 최종 전국 662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마파도2'와 '조폭마누라3' 등이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새로운 관객몰이에 나섰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또 지난해 '제작 과잉'의 이면에서 제작 투자 분위기가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했고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부터 '한국영화의 위기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 2월=69.2%, 서서히 감도는 위기감
'그놈 목소리'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1번가의 기적', '복면달호' 등 코미디물의 선전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유지해주었다. 별다른 화제의 외화들이 없었던 것도 한국영화의 높은 점유율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이 때부터 한국영화의 본격적인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1월부터 2월까지 한국영화 관객이 전년 대비 무려 32.8%나 줄어들었고 매출액에 있어서도 지난해보다 34%가 적어졌다.
# 3월=20.5%, 위기 현실이 되다
'위기는 기회'가 되지 못하고 참담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3월14일 개봉한 '300', 2월28일 관객을 만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등 외화들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극장가 비수기라는 전통적이고 구조적인 상황 속에서 '뷰티풀 선데이'. '수', '이장과 군수' 등 화제의 한국영화들이 잇따라 관객몰이에 실패했다.
화제의 외화들은 많은 관객을 몰고 다녔고 이는 상반기 할리우드를 포함한 외화의 초강세 분위기를 유지하는 신호로 다가왔다.
# 4월=55.4%, 스크린쿼터 그리고 힘겨운 싸움
4월18일 영화산업 최초로 노사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사진은 조인식 모습.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이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절반으로 줄어든 스크린쿼터 상영일수는 향후 더 늘릴 수 없게 됐고 한국영화계는 크게 반발했다. 영화계는 제작 및 투자 등의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스크린쿼터제를 현행 일수에서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한 것은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4월 한국영화계는 또 하나의 역사를 다시 썼다. 영화산업 최초로 노사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노조)은 4월18일 영화산업 단체협약 조인식을 갖고 7월1일부터 4대보험 가입, 최저임금 확보, 주 40시간제, 휴게 및 휴일(가), 모성보호 등을 골자로 한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로써 영화 스태프의 임금은 약 50~60% 인상되는 효과가 발생하며 향후 한국영화 제작 환경에 변화가 올 것임을 예고했다.
한편 4월12일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가 개봉했다. 하지만 '천년학'은 젊은 관객들의 눈에 들지 못했고 극장에서 조기종영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극락도 살인사건'이 한국영화의 체면을 세우며 흥행했다.
# 5월=24.5%, '칸의 여왕' 전도연의 낭보
5월 전도연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이렇다 할 한국영화 개봉작도 없었고 한국영화는 힘겨운 상반기 상황 속으로 더욱 침잠해갔다.
하지만 5월27일 프랑스 칸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의 전도연이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이다. 5월 중순 시사회를 시작으로 '밀양'은 국내외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결국 전도연은 '칸의 여왕'으로 거듭났다.
# 6월=27.7%, 위기 넘는다
'슈렉3'가 6월14일, '트랜스포머'가 6월28일 각각 개봉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는 이어졌다. 여전히 한국영화는 짓눌렸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기세등등한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었다.
'황진이'가 이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검은집'이 6월21일 개봉하며 오랜만에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국영화계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상황은 그리 여의치 못했고 결국 27.7%의 낮은 점유율에 만족해야 했다.
또 5월 초 '스파이더맨3'의 개봉과 맞물린 '스크린 싹쓸이' 논란도 더욱 거세져갔다. 심지어 '스파이더맨3'와 '슈렉3',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등이 차지한 스크린수는 전체 스크린수의 80% 가량을 장악하면서 극심한 '스크린 싹쓸이' 논란과 함께 '쏠림현상'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져갔다.
# 7월=17.6%, '트랜스포머'는 셌다
7월에 한국영화계는 2007년도 가장 낮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6월28일 개봉한 '트랜스포머'를 시작으로 7월11일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7월17일 '다이하드4-죽어야 산다'로 이어지는 블록버스터 외화들의 공세는 물론 그 파괴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트랜스포머'는 개봉 한 달 만에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개봉작 가운데 흥행 1위를 차지했고 흥행 톱10 안에 무려 7편의 외화가 들어앉았다.
여름방학 시즌을 맞아 블록버스터 외화들의 막강 경쟁상대로 꼽혔던 한국 공포영화 역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부학 교실'과 '므이' 등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관객은 외면했다.
# 8월=75.2%, '디 워' '화려한 휴가' 흥행몰이
'디 워'
7월25일 '화려한 휴가'가 개봉하고 8월1일 '디 워'가 논란 속에 흥행의 기선을 잡았다. 두 영화는 빠른 속도로 흥행세를 몰아갔다.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아 이를 전면적으로 다루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디 워'는 심형래 감독의 작품으로 그 작품적 완성도를 둘러싸고 숱한 논쟁에 휘말렸다. '디 워'의 완성도에 비판을 가한 언론과 평론가들은 '디빠'들의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디 워'는 이후 9월14일 미국 전역 2275개관에 개봉해 1000만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두기도 했다.
두 영화 덕분에 한국영화는 75.2%의 높은 점유율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 9월=60.1%, 추석 흥행경쟁
9월 한국영화는 추석 연휴 시즌을 노린 본격적인 흥행 경쟁에 나섰다.
9월6일 '마이파더'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 12일 '권순분여사 납치사건'과 '두 얼굴의 여친', 13일 '즐거운 인생'과 19일 '상사부일체' 그리고 '사랑' 등의 한국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이들 영화들은 모두 황금의 추석 연휴 극장가 흥행을 노리며 관객몰이에 나섰다. 외화로는 '본 얼티메이텀'이 강력한 경쟁 상대로 나섰다.
특히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가 6년 만에 최저 점유율을 기록할 만큼 극심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를 추석 연휴 흥행 경쟁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경쟁은 '본 얼티메이텀'과 '사랑' 그리고 '디 워'의 승리로 끝났다.
# 10월=60.8%, 영화제, 영화제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9일 막을 올렸다. 개막 당일부터 내린 비는 이후 9일 동안 펼쳐진 영화 축제가 말도 탈도 많은 행사가 될 것을 예고했던 것일까.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의전을 둘러싼 논란이 영화제 내내 이어졌고 'M' 기자회견장에서 벌어진 소동 등도 뒷말을 남겼다.
그러나 64개국 275편이 상영되고 지난해 16만4000여명보다 많은 20여만명의 관객이 참가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외형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영화제를 향한 영화제측의 행보를 빠르게 했다.
10월19일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영화연기대상 시상식도 열렸다. 하지만 수상 및 시상 배우들의 대거 불참과 함께 생방송 중계 취소 등으로 시상식은 파행적 진행을 면치 못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영화제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등의 논란도 일었다.
# 11월=51.6%, 시상식 주인공은 누구?
12월1일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도 개최돼 영화 '밀양'이 작품상, 감독상(이창동), 남녀주연상(송강호, 전도연) 등 주요 부문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상 결과 혹은 이를 통해 2007년 한해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과 감동으로 다가간 숱한 영화를 되돌아보는 데 관객은 인색했다. 오로지 시상식에 앞선 레드카펫 행사에 시선은 쏠렸다.
한편 허영만 원작 영화 '식객'이 조용한 관객몰이에 나서 흥행세를 달렸다. 기획력의 승리라 할 만한 '식객'의 흥행에 한국영화 위기 극복의 열쇠가 있다고도 평가하는 축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극심한 극장가 비수기는 관객수의 감소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 12월=?, 2008년을 기대하며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영화 관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또 이 기간 전체 흥행작 톱 10 안에 한국영화는 '디 워', '화려한 휴가' 그리고 '미녀는 괴로워' 등 3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 면에서도 11년 만에 최저치가 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아직 올해 한국영화 전체 점유율 및 12월 관객 수치 등 집계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한국영화 관계자들은 우울한 전망을 거두지 못한다.
다른 한 편에서 내년도 한국영화에 기대작들이 많아 비관에만 머물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어쨌든 올해 한국영화는 그 만큼 어렵고 힘겨운 '겨울'을 보냈다. 한 관계자는 "겨울이 추워야 그 다음 봄이 따스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한국영화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