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TV사극의 산역사라 할 수 있는 김재형(72, 사진) PD가 사실상 은퇴한다.
지난 5일 '왕과 나'의 김 PD가 전격 하차하고 이종수 PD(SBS 전 드라마국장)가 연출을 대신 맡기로 결정됐다. 김 PD는 지난해 7월 말 경기도 수원 한국민속촌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 쓰러져 입원, 당시에도 이 PD가 잠시 연출을 맡기로 했다.
김 PD는 당시 췌장염과 신우염 진단을 받은 후 복귀했으나 '왕과 나'의 스튜디오 녹화만 맡아 드라마에 크게 간여하지 못해왔다. 그의 건강이상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제작사인 SBS프로덕션은 이를 쉬쉬하며 감춰왔다.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SBS프로덕션의 이현석 본부장과 공동연출 손재성 PD, 조연출 이창우 PD, 민연홍 PD, 프로듀서 윤류해 PD 등이 힘을 합쳐 캐스팅, 기획, 편집과 연출 등을 나눠 김 PD의 빈자리를 메꿔왔다. 그러나 결국 김 PD가 이 작품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새로운 연출자의 투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1936년생인 김 PD는 1961년 개국준비요원으로 한국방송공사(KBS)에 입사, 이듬해 TV사극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46년간 연출 인생을 걸어왔다.'별당아씨', '사모곡', '한명회', '왕도', '왕조의 세월' 등 무수한 수작을 선보였다.
환갑이 넘어 선보인 KBS 1TV '용의 눈물'(1997), SBS '여인천하'(2001) 등은 그의 스타일을 집대성하며 사극 르네상스의 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SBS '왕의 여자'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남들은 은퇴를 할 나이에도 그의 연출 열정은 시들지 않았다. 남북합작으로 '연개소문'과 영화를 준비하며 재기를 꿈꿨다.
2007년 내시의 일대기를 다룬 SBS '왕과 나'로 컴백한 김 PD는 권력욕, 질투, 배반, 야심 등 강렬한 인간 본능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파워풀한 연출력으로 '역시 김재형'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 악화와 맞물려 드라마는 구심점을 잃었다.
노장 김 PD는 이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이번이 248번째 작품이다. 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져가면서 드라마를 하고 있다. '왕과 나'를 꼭 성공시키려고, 이것이 마지막이라며 다짐을 한 뒤 연출하고 있다"는 각오를 밝혔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한 채 중도하차하게 됐다.
그러나 김 PD는 7일 스타뉴스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건강이 안좋아 좀 쉬려 한다. 통원치료를 받으며 건강이 좋아지면 복귀할 것"이라며 연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한편 '왕과 나'는 50회로 기획된 후 연장방송될 것으로 보였다. 최근 탤런트 유동근의 제작진 폭행사건으로 연장방송은 무리가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으나, 최종 67회로 4월 종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당사자이긴 하지만, '용의 눈물'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던 유동근은 아버지 같은 김PD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염려의 뜻을 드러냈다. 유동근은 선배 탤런트 임동진, 이덕화와 함께 지난 2005년 김 PD의 고희연을 마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