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한국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동건이 출연한 '런드리 워리어'와 전지현 주연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비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가 올 해 개봉될 예정이며, 이병헌 또한 파라마운트가 제작하는 'G.I. 죠' 출연이 유력하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시장에서 한국배우들이 작품으로 활동하는 것은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것 못지 않은 활약이다. 배우 개인으로서도 기쁜 일이겠지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전역에 일어난 한류 이상의 효과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때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한국배우들을 필요로 하는 데는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효과 외에 일본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작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출연할 한국배우들, 또는 예전에 출연 제의를 받았던 한국배우들은 하나같이 일본인 역을 제의받았다.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하는 비는 원작이 일본 애니메이션인 만큼 처음에 일본인 레이서 역을 제의받았으며, '스피드 레이서'에 이어 '드래곤볼'에 출연하는 박준형 역시 원작이 일본 애니메이션이기에 자연스럽게 일본인 역을 맡았다.
이병헌 또한 'G.I. 죠'에서 제의 받은 역은 닌자 역이다. '로스트'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김윤진은 '게이샤의 추억'에서 게이샤 역을 제안받았다.
할리우드에서 한국배우들에게 일본인 역을 제안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일본을 배려하는 것이다. 대개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들이 제안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악역인 북한을 묘사하는데도 한국배우들의 출연을 요청하기도 한다. '007 어나더데이'에 북한군 악역으로 차인표에게 제의가 왔으나 거절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국내 톱스타들이 할리우드에서 일본인 역을 맡는 게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는 항상 앙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첫 진출하는 데 하필이면 일본인이냐는 논란도 가능하다.
반일감정이 만만치 않은 중국에서도 '게이샤의 추억'에 장쯔이가 일본배우와 베드신을 찍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인 역을 맡는다는 이유만으로 꼭 할리우드 진출을 고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현명한 방법이 있다.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비는 일본인이라는 설정에 대해 제작사에 요청해 무국적자로 변경해달라고 했으며, 영화 곳곳에 한글 표시를 남기도록 했다. 김윤진은 "'게이샤의 추억'에 게이샤라서 출연하지 않은 게 아니라 캐릭터가 흥미가 없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대응은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는 한국배우들로서 생각할 볼 방법이다.
한 직배사 관계자는 "할리우드에서 한국배우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다. 아시아 시장 규모가 훨씬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상의 문제로 일본인 역을 고사하는 게 아니라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계는 위기 탈출의 한 방법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단순히 리메이크 판권을 파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 제작사와 공동 제작도 꾀하고 있다. 배우들이 먼저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한국영화 산업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 진출 원년이라고 기억될 2008년, 해외에 진출하는 배우들은 배우로서 고민 외에 더한 짐을 지고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