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진 인턴기자>
류승범은 한국영화 위기를 온 몸으로 체험한 배우이다. 2006년 '사생결단'을 끝으로 2년이 지나 오는 31일 개봉하는 '라듸오 데이즈'에 출연하기까지 근 2년을 스크린 밖에 머물렀다.
준비했던 영화들이 차례로 무산되면서 류승범은 연기에 대한 깊은 갈증에 허덕였다.
류승범에게 찾아온 이런 위기는 배우 개인에게 찾아온 위기일 뿐 아니라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영화의 위기이기도 했다.
'주먹이 운다'나 '사생결단'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그동안 류승범이 출연했던 작품들은 꽃미남 배우가 필요로 하거나 장르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아니었다. 류승범의 표현대로 메이저 안에서도 소외되는 성향들의 작품이었다.
한국영화산업에 어려움이 찾아오면서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곧 이는 류승범이 놀 무대가 적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류승범은 이런 현실에 안타까워했고, 또 두려워했다.
"2006년에는 '사생결단' 끝나고 놀기에 바빴는데 2007년에는 많이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요즘에는 더욱 힘들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껴요."
류승범은 "웰메이드 상업영화에서 가장 나에게 맞는 작품들을 고른다"고 작품 선택 기준을 말했다. 그런 면에서 '라듸오 데이즈'는 2년 만에 찾아온 류승범표 영화이기도 하다.
30년대 경성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하는 내용의 '라듸오 데이즈'에서 류승범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한량인 피디를 맡았다. 흘러가는 세월에 몸을 맡기다 어느 순간 분개하는 극 중 인물은 어찌보면 배우 류승범과도 닮았다.
배우가 되려고 노력해서 배우가 된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배우 밖에는 할 게 없는 인물. 물론 류승범은 어느 틈에는 배우로서 꿈을 꾸고 또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영화 속 인물과 차이를 둔다.
30년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딱히 두렵지는 않다. 류승범은 "모든 영화는 달라야 하고, 모든 배우도 달라야 한다. 그런면에서 30년대를 다룬 작품들도 모두 다를 것이고 그래서 관객들이 선택하는데 더 즐거울 것이다"고 말했다.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일본영화 '미스터 맥도날드'와 비슷하다고 벌써부터 소음들이 흘러나오고도 있다. 류승범은 그것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류승범은 남들과 다르다는데 스스로 만족하고 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조승우와도 다르고, 박해일과도 다르기 때문에 류승범을 관객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족한다.
"해마다 시상식에 후보에 오르는데 상을 못타서 안타깝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출연한 출연한 영화들이 매해 노미네이트된다는 것은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다름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있다는 게 내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홍봉진 인턴기자>
류승범은 여린 감성과 거친 감성을 오고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유쾌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스트라이트 파이터' 같다고 생각할지라도 류승범은 그냥 자신의 길을 걸으려 한다. 그는 "비가 오는 날에는 친구들과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까칠게 변할 때도 있죠. 그런 모습을 보고 저를 감성적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알게 모르게 류승범이 선행을 많이 하는 것도 그의 이런 감성과 맞닿아 있다. 류승범은 자신의 일에는 대범하다가도 사회적인 현상에는 시시때때로 분노한다.
"스캔들이나 이런저런 시선에는 이제는 담담해졌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만 잘사는 것에 관심을 두는게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소외받고 어렵게 살아서 그런 것도 있구요.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으니깐요. 물론 나보다 훨씬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말을 하는게 우습기도 하지만요."
고등학교를 중퇴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배우 류승범. 하지만 세상은 때때로 그에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옛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편하게 지내는 연예계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색안경을 끼곤 한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보내는 시간들은 내게는 큰 위로가 되요. 하지만 또 사고치려고 한다는 시선들이 있죠. 때로는 한국말을 못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나친 관심은 독"이라고 말하는 류승범은 배우와 연예인 사이에 서있는 그의 위치에 혼란을 겪었음을 토로했다.
남들과 다르고 싶어하는 류승범은 차기작으로 형인 류승완 감독과 '다찌마와리'를 찍는다. 인터넷용으로 제작됐던 단편을 장편 상업영화로 제작하는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분량도 적고, 또 형과 한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는 즐겁다.
"정말 그 당시 자유롭고 즐겁게 촬영했거든요. 누군가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것도 얼마나 기쁜 일인데요. 사실 전 지금도 시상식에 가면 어색해요.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즐거우니깐 일을 계속 하게 되요."
배우로서 출발부터 남들과 달랐고, 걸어온 길도 남들과 다른 류승범은 남들과 다른 길을 계속 걸으려 한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류승범표 영화가 당분간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배우에 대한 애정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