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순' 임순례 감독 "배우의 진정성 전달, 기쁘다"(인터뷰)

윤여수 기자  |  2008.01.21 11:43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영화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을 통해 주변부 삶의 고단한 일상을 담아냈던 임순례 감독. 비록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진하고 긴 여운을 남겼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7년 만에 신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제작 MK픽처스)을 들고 관객을 만나고 있는 임순례 감독. 그가 핸드볼 경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아니 '어떻게 만들까' 하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영화는 공개됐고 개봉 일주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명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세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임순례 감독이 그 동안 들여다본 주변부 혹은 '마이너리티'의 삶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도 역시 그의 그 같은 시선이 여전히 담겨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최고의 흥행' 기쁨을 맛보고 있는 임순례 감독을 최근 만났다. 그는 '흥행감독'이라는 말에 대해 "아직 낯설다"고 웃었다.

-축하한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오히려 난 담담하다. 아직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설 시즌을 순조롭게 넘겼으면 하는 건데,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기뻐해 좋다. 제작비 정도만 회수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몇 명이 봤다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이 힘을 얻었으면 한다.

-관객들은 왜 지지하는 걸까.

▶흔히 보아온 스포츠영화는 장르의 공식을 따르곤 했다. 경기에서 질 만한 상황에 영웅이 나타나 승리로 이끈다는 이야기 말이다. 설정은 뻔하더라도 관객을 감동시키는 장르 자체의 힘이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실제 경기의 힘도 컸다. 배우들도 굉장히 열심히 했고 그 진정성도 전달됐다. 시나리오상 진부한 점도 없지 않지만 캐릭터나 구성, 이야기의 엮음은 탄탄했다. 또 일부 캐릭터의 유머와 캐릭터도 이야기의 무게를 줄여줬다.




-너무 겸손하다. 김정은, 문소리, 김지영, 조은지 등 '쟁쟁한' 배우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촬영 전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만만치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운동을 함께 하면서 배우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톤을 맞춰갔다. 똑같은 운동을 하면서 서로 닮아갔을 거다. 육체적 동질감을 통해 가까워진 거다.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배우들은 지금 친구가 됐고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됐다.

-그 동안 꾸준히 들여다봤던 '마이너리티'의 이야기라고들 하는데.

▶국내 핸드볼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 '관심의 사각지대 혹은 소외지대'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굳이 '마이너리티'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그리려 했다.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 생기고 대단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영화는 대리만족이라는 판타지 기능과 함께 현실을 일깨워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나는 판타지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해보자는 것 뿐이다. 그건 내 취향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라.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그런 연장선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관심을 받는 걸까.

▶전작들은 대중적 문법으로 그린 영화가 아니다. 사실, 관객 다수를 만족시키면서 소수의 감성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이라는 '대중적 흡입력'과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최소의 관객을 동원하려면 조금 더 대중적인 화법과 어법이 필요했다.

-대중적 어법이란 관객의 눈높이에 맞췄다는 걸까.

▶예전에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라는 측면이 헐겁고 완성도가 떨어져도 어느 정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면 봐줬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전체적으로 연기와 연출, 시나리오 등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한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거다. 그들의 눈과 판단력은 놀랍다.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골라내는 능력, 대중적 직관과 선택력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제작비 규모와 관객 동원에 대한 고민이 많았나보다.

▶소재에 따라 제작비 규모가 정해지는 거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저예산으로는 만들 수 없다. 많은 돈이 들어간 소재라면 자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감은 불가피하다.

-특히 경기 장면에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걸로 안다.

▶사실 좀 아쉽다. 제작비 때문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장비와 소품, 엑스트라 등 모든 게 부족했다. 그렇다고 제작일수를 늘릴 수도 없었다. 배우들의 체력적 한계도 많았다. 디테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휴먼드라마에 초점을 두지 않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기의 긴박감 혹은 긴장감은 필요했다. 좀 더 리얼하게 표현됐어야 했는데...

-이 영화 이전에 ''소녀축구단' 이야기를 기획하기도 했다는데.

▶가톨릭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의 아이들 이야기였다. 2002년쯤일 거다. 하지만 '보리울의 여름'이라는 비슷한 컨셉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보류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크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 다만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상업적 장르영화도 만들고 싶고. 그 사이 균형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코미디 장르도 생각이 있다.

-코미디? 의외다.

▶웃음이 큰 것보다 슬그머니 미소를 짓거나 조용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상황 속에 내포된 웃음 같은 거다. 슬프거나 극한의 상황에서 웃음을 주고 아주 웃길 만한 상황에 슬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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