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봉 "불암이형·순재형, 나처럼 패키지여행 할 수 있나?"

윤여수 기자  |  2008.01.22 13:17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의 배우 변희봉은 최불암과 이순재를 '형'이라 불렀다.

그리고 최근 부인과 함께 그리스, 터키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불암이형과 순재형, 아니면 유명한 후배들이 나처럼 패키지여행을 떠날 수 있겠느냐"며 일상의 자그마한 행복에 겨워했다.


'지금 갖고 계신 꿈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변희봉은 인터뷰를 하던 날 "오늘 아침에도 내자가 건강에만 신경쓰라고 했다"면서 "역시 건강이 최고다"고 말하며 이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 나이에 큰 뜻을 갖거나 하는 건 아니다"면서 모자 눌러쓰고 마스크로 겨울 날씨의 냉기를 막으며 자주 산을 오르내리는 그는 "그렇게 하고 다니면 누가 날 몰라본다"면서 부인과 함께 한 여행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행복은 그런 것일 게다. 먼 데 좀 더 크고 멋진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달려가보면 막상 그건 별 것 아닌, 그저 내 곁에 있는 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 겐가 보다.

변희봉은 그런 일상 속에서 수십년의 연기 생활이 빚어낸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는 "1년에 한 두 편이라도 조단역이라도 좋은 역할이 있어서 나를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겸사도 나오는 것인가보다.


이런 바람은 실상 배우로서 응당 가져야 할 욕망이기도 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더 게임'(감독 윤인호)에서도 역시 그 빛을 발하며 주연배우로서 묵직한 자리를 지킨 변희봉은 낮지만 울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후배들에게 교훈을 전하는 듯하다.

희끗희끗 보이는 백발과 목에 두른 머플러가 멋드러져 중후한 멋을 드러내던 변희봉의 그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영화 '더 게임'변희봉은 한참 어린 기자에게 존댓말을 잃지 않았다.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사진=홍봉진 인턴기자


-감기 기운이라도.


▶좀 그러네요. 약은 먹었는데.

옅하게 내온 커피를 조심스레 마시며 변희봉은 말했다.

-'더 게임'의 시나리오를 보시고 무릎을 '탁' 치셨다고 하셨어요.

수십년의 연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와 다른 댓거리는 필요없을 듯했다. 그저 연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가 지닌 인생의 가치만이 듣고 싶었다.

▶얘기가 신선하더라고요. 미처 상상하지 못한 지점 같은 거. 젊지만 거리화가(신하균)와 늙은 부자가 서로의 육체와 기억을 바꿔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 또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아주 다양할 것이라는 점 말이죠. 1인2역 연기를 펼치는 영화는 있지만 뇌를 바꿔 사람이 변하는 이야기는 없었어요. 가장 큰 매력이 그거죠.

-흥행에 대한 기대도 크시겠습니다.

▶큰일났어요. 왜 이리 부담이 되는지. '괴물'로 너무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번 영화는 배우는 다양성을 지녔고 뭔가 할 수 있는 심판대 같은 작품이죠. 한국영화에 일말의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관객에게 준다면 큰 영광이에요. 정말 두렵습니다. 안되면 차기작은 어떡해.

-영화로선 주연작인데요.

▶소위 주연을 해보니 그 동안 조단역하며 살아온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디다. 주연배우들이 이렇게 힘들구나 말이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이고! 허허! 영화가 잘 되면 (나 같은 중견배우가) 힘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추장스러울 거요.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튼튼한 길이 되어야 뒤에서 탄탄대로를 걷지 않겠어요?

-영화 속에서 젊은 시절을 만끽하셨겠네요?

내심 가벼운 질문이라 여겨 물었지만 변희봉은 진지했다.

▶두 사람이 서로 바뀐 다음, 조금 희화화해서 표현하면 어떨까 했는데 감독은 나보다 고지식합디다. 감독의 의도가 잘 먹혔으면 합니다.

-살아오시면서 가장 큰 게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가족들과 얘기할 때 그럽니다. '인생은 게임이다'. 사실 배우를 하면서 풍족하지 못했어요. 가난했던 시절도 있었고. 70년대엔 TV에 출연하면 그래도 생활할 정도는 됐어요. 빚을 내야 할 때쯤 벌이가 되고. 한때 배우를 포기하려 했어요. 인생을 바꿔봐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가장으로서 마음이 쉽지 않았죠. 하지만 다시 돌아온 건 어쩌면 내가 (인생의)게임에서 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세상도 살아왔는데 뭐든 못할까, 패기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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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은 그러면서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영화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놀아도 좋은 작품 안 걸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작품 속에서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사람은 12번도 변할 수 있어요. 시련이 어렵고 지금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는 말이 이어졌다. 젊은 후배들에게 "발을 넓히고 숨쉬면서 살아라"고 말해온 그다. "코 빠뜨리고 살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꿈은 머리 속에 있는 거니까 꿈을 갖고 밀고 나가면, 뭔가 생각한다면, 시련을 겪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역시 지난 수십년의 인생을 "머리 속 꿈"을 갖고 살아온 듯하다. 그는 '더 게임'에 관한 설명을 하며 "있는 자가 가는 인생은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염두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남이 보기에 좋지 않은 건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생의 교훈을 어른으로서, 선배 배우로서 변희봉은 말했다. "메시지가 있는" 좋은 작품에서 "우리 것을 알고 이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 될 것"이라는 변희봉은 "변신하고 싶다"는 무릇, 배우의 욕망을 안고 산다.

그런 의미에서 변희봉은 아직 '젊은 배우'가 아닐까. 그는 여전히 보여줄 게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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