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카리스마에 모든 것이 멈췄다. 주가 등락이나 삼성특검, 새 정부 장관 하마평에 대한 관심도 모든 게 정확히 한시간 동안 끊겼다. 온갖 괴소문에 시달리던 가수 나훈아(61)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가진 25일 오전 11시~낮 12시, 대한민국에는 오로지 나훈아만 있을 뿐이었다.
'무대인생 40년'의 나훈아가 이날 보여준 카리스마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연예인 기자회견으로는 가장 많은 600여명의 기자가 몰린 이날, 그는 기자회견장에 등장하자마자 "(괴소문에 대해) 해명할 건 내가 아니라 언론"이라며 일성을 날렸다. 이후 정확히 1시간 동안 '카리스마 쇼'처럼 진행된 기자회견의 시작이었다.
나훈아는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면 내가 개xx다" 같은 격한 언어와 성난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급기야 성기절단 소문에 대한 반박을 위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 지퍼까지 내렸을 때가 그 정점이었다. 순간 회견장에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무대 장악력과 카리스마는 케이블채널 YTN과 YTN스타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시청자들은 사정없이 언론을 질타하고 근 1년동안의 행적을 거침없이 밝힌 나훈아의 모습에 "말하는 것부터 일반 국회의원과 차원이 다르다" "평소 팬은 아니었지만 카리스마가 진짜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YTN 관계자는 "우리가 봐도 숨이 막혔다. 시청률도 평소보다 2~3배 높게 나올 것 같다"고 흥분해했다.
방송만이 아니었다. 기자회견 속보가 쏟아진 각 언론사 인터넷 사이트와 포털은 서버가 다운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머니투데이 사이트의 경우 1시간 동안 기사 검색이 제대로 안될 정도로 네티즌들의 클릭이 폭주했다. 나훈아의 기자회견 장면을 포착한 사진기사는 게재후 가뿐히 클릭수 10만건을 넘었으며, 다른 취재기사에는 순식간에 1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나훈아 기자회견'이 네이버, 다음 등 각 포털 검색순위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한 대기업 마케팅팀 직원은 "회사에서 몰래 YTN 속보창을 띄어놓고 기자회견을 봤다. 나훈아의 포스는 명성 그대로였다"며 "다른 친구들도 이 속보창을 보면서 HTS(홈트레이딩시스템) 주식거래를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훈아는 오늘 대중의 아이돌이 됐다. 나훈아는 사실 '죽은 세대'여야 하는데 그가 마치 20대 아이돌 스타처럼 재등장했다. 40~50대 과거 팬들은 마치 자신들의 20대로 되돌아간 심리경험을 했고, 지금의 10, 20대들은 나훈아를 자신의 우상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이어 '나훈아 괴담'에 대해서는 "신정아, 대선, BBK, 삼성, 허경영 등이 더이상 대중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골치 아픈 사이, 더 재미있고 더 섹시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심리가 생겨났었다"며 "대중은 이번 '나훈아 괴담'처럼 자신이 믿고 싶거나 상투적인 스토리 틀에 맞는 이야기로 사건을 만들어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