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사나이' 차인표, 흥행배우 되었으면

김관명 기자  |  2008.03.25 08:49
차인표. 이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흔한 배우 이름를 넘어선다. 우선은 아내 신애라와 함께 해오고 있는 가슴 따뜻한 입양 사연이 그렇고, 북한을 못되게 그렸다는 이유로 007 영화를 거부한 속내가 그랬다. 매스미디어에 노출된 그가 털어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는 그래서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이 땅의 대표적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됐다.


그런 그가 오는 5월이면 '크로싱'이라는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는 축구 선수 출신이자 탄광노동자인 용수(차인표)가 아내의 약을 구하고자 탈북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을 그렸다. 권상우의 '화산고'와 강동원의 '늑대의 유혹'으로 한방을 날린 김태균 감독이 간만에 메가폰을 잡은 만큼 진작부터 기대가 높은 작품이다.

차인표는 '크로싱' 제작발표회에서도 예의 바른 생활 사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진정성'을 토로했다. "굶어죽어가는 북한 어린이 사진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 중국 등지를 돌며 비밀리에 촬영한 김 감독도 "차인표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진정성이 이 작품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차인표의 인간미와 진정성에 넋만 놓을 상황은 아니다.

우선 북한을 어둡게 그린 영화들의 우울한 성적표가 걱정이다. 대표적인 게 차승원이 탈북청년으로 나와 가슴 아픈 순애보를 펼친 2006년작 '국경의 남쪽'은 잘 알려진대로 전국관객 40만명도 불러모으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했다. 북한이 어렵다는 건 알지만 이를 굳이 돈을 내고서까지 스크린에서 보고싶지는 않다는 것. 괴로우니까, 구질구질해지니까.


이에 비해 인민군 송강호와 신하균이 후덕하고 순진했던 '공동경비구역 JSA'나, 정재영 임하룡 류덕환이 따뜻한 인민군으로 나왔던 '웰컴투 동막골'은 대박이었다. 왜? 그들의 북한 사투리는 뻥튀기마냥 구수했고, 그들의 구석구석 마음씀은 냉랭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었던 거니까. 아무리 그게 판타지일지라도.

이러한 탈북 소재 자체가 주는 불안감에 지금까지 차인표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묘하게 겹쳐진다.

차인표는 90년대 그야말로 혜성처럼 TV에 등장한 배우였다. 큰 키에 이국적으로 잘 생긴 외모, 지적이면서 우수에 찬 듯한 분위기는 그의 약간은 어눌한 발음을 넘어서고도 남았다. 1994년 지금은 아내가 된 신애라와 함께 한 MBC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이러한 그의 매력이 집약된 작품이다.(기자는 당시 드라마 제작발표회를 취재했었는데, 처음 본 이 남자 차인표의 후광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이후 장수봉 PD의 역작 '까레이스키'를 거쳐 히트작 '그대 그리고 나'와 '별은 내 가슴에'까지 차인표의 TV드라마 선구안은 합격점이었다. 지저분한 외모 변신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MBC '왕초'를 비롯해, 지난해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겼던 MBC 의드 '하얀거탑'도 그의 드라마 필모그래피를 빛나게 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쪽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윤호 감독의 98년작 '짱', 곽경택 감독의 99년작 '닥터 K'도 감독과 주연배우 이름은 빛났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절치부심해 고른 육상효 감독의 '아이언 팜' 역시 전기밥솥에 손을 팍팍 쑤셔넣으며 철사장을 연마했던 장면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차인표가 신부로,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간 박영규가 스님으로 나온 '보리울의 여름'도 흥행을 말하긴 민망한 수준이다.

그나마 흥행에서 약간 빛을 본 게 김지훈 감독의 '목포는 항구다' 정도인데 이 작품 역시 조재현이라는 마음만 열혈인 형사의 연기 덕이 컸고(조재현이라는 배우의 생매장 당하기 장면을 떠올려보시라),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라는 빛나는 대사를 탄생시킨 조연 박철민의 힘이 컸다. 물론 사랑에 빠진 조폭 우두머리 백성기를 코믹하게 터치한 차인표의 연기력도 볼 만했지만, 이는 잘짜여진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힘이다.

결국은 다시 '크로싱'이다. 그는 "북한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 불쌍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고 영화에 참여한 것이 실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아들 정민이가 극중 아들의 나이와 같은 11살이다. 촬영을 하면서 내 아들과 많이 오버랩됐다. 내 아들이 먹을 것 없어 굶어 죽어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진정성을 관객은 알아줄까. '크로싱' 제작보고회에서 차인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박수를 친 취재진의 감동을 과연 관객도 느낄 수 있을까. 말과 심정과 기사가 아니라 그저 한 편의 영화로? 차인표의 영화 필모그래피에도 당당히 내세울 그런 작품이 과연 '크로싱'이 될 수 있을까. 5월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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