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나쁜 남자' 지석진, 쨍하고 해떴다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08.04.01 08:20


새로 산 하얀 셔츠에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김치 국물 튀기기, 스프레이로 머리카락 잔뜩 세운날 갑자기 소나기 내려서 스타일 구기기,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헤벨레~ 대자로 넘어지기, 소개팅 나가서 배탈로 화장실 들락거리기, 첫출근 하는 날, 알람 잘못 맞춰서 한 시간 지각하기.


상상해보시라! 이렇게 억수로 재수없는 일들이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생긴다면? 뜨아악~ 못 살지, 못 살아! 일년은 커녕, 한달, 아니 일주일도 못 견디지! 하지만, 억수로 운 나쁜 일들을 거의 20년 다 되도록 견뎌온 남자가 있었으니, MC지, 바로 지석진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개그우먼 송은이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난 오빠가 지금처럼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어. 기를 쓰고 노력해도 오빠처럼 그렇게 하는 일마다 다 안 되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 이 얘기에 지석진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말한다. “맞아,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러면서 그들이 들려 준 이야기는 이랬다.


지금도 방송에서 가끔씩 웃음거리(?)로 회자되고 있는 지석진의 앨범, ‘난 알아요’가 안된 사실은 뭐, 시작에 불과하다. 신인 개그맨으로 방송국에 입성했으나, 일이 없으니,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일보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날이 더 많은 건 당연했고, 어쩌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한 코너를 시작하게 되나보다, 하면 재미없단 반응에 바로 한 주만에 없어져버리는 일이 수십 번. 방송에선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당최 찾을 수가 없었으니, 이름만 개그맨이요, 실상은 백수(?)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던 MC지, 몇 몇 신인 개그맨들과 모여 몇날 몇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어렵게 한 번의 녹화 기회를 얻었다. 두그두그두그~ 결과는? 쥐구멍에도 볕 뜰날이 있다고 했던가! 제작진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렇게해서, 드디어 고정 코너로 쭉~ 가기로 결정됐다. 지석진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정 코너를 얻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 두 번째 녹화 날이 됐는데... 녹화장에선 난리가 났다. ‘도대체 지석진은 어디 있는거야! 왜 안와?’ 녹화 시간이 다 지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 그럼, 그 시간 그는 어디있었던 것일까? 깨끗하게 목욕 제개하고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두 번째 녹화를 하려다가 그만 사우나 탈의실에서 깜박 잠이 들고, 그냥 쭉~ 숙면으로 이어졌던 것! 결국 어렵게 맡은 고정 역할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단다.

그의 억수로 운 나쁜 일들은 심지어 아들 현우의 돌잔치날에도 계속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예쁜 내 새끼니, 그 준비가 오죽했으랴! 가족들, 친구들, 동료 연예인들, 방송 관계자들, 수많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들을 기다렸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돌잔치 장소는 휑~하니 가족을 비롯한 몇몇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하필이면 그 날, 딱 그 시간에 맞춰 거의 십 수년만에 처음으로 폭우가 쏟아진 날이라나 뭐라나! 10분 거리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교통 대란이 와서, 돌잔치에 오려던 사람들이 차안에서 한 두 시간을 보내다 결국은 못 간다는 전화만 수십통. 돌잔치가 무슨 한미FTA도 아니요, 남북 정상회담도 아니요, 그저 남들 다 순탄하게 잘 치르는 즐거운 행사인데, 하필 그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결국 주문한 음식들이 다 남은 건 둘째 문제고, 휑~한 돌잔치만큼 씁쓸한 상처가(?) 마음에 휑~한 구멍으로 남았단다.

이런 일들의 반복은 데뷔 이후, 거의 20여년이 다 되도록 계속됐으니,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를 보라! '하이 파이브'와 '스타 골든벨' '진실게임' 등 주말 황금시간대와 평일, 각종 특집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의 MC로 자리잡은 당당한 모습을!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하늘은 노력한 만큼 그대로 돌려준다는 말이 맞는 가보다. 누구나 다 아는 뻔~한 말이지만, MC지를 보면서 진/인/사/대/천/명이 한 글자, 한 글자 살아 숨쉬며 가슴에 팍팍 꽂힌다.

<이수연 SBS '진실게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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