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감독이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을 거느리고 데뷔작을 만들었다면, 문득 궁금해진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뿌듯하고 대견한 느낌도 든다. 그곳에 만연한 편견과 질시의 벽을 투지와 정열로 뛰어넘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친한 후배가 영화 수입에 관여했다는 조건까지 더해지면, 빳빳이 쳐들어야 할 칼럼니스트의 고개가 슬그머니 숙여진다. 이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영화가 대단치 않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출연배우들(케빈 베이컨, 브랜든 프레이저, 앤디 가르시아, 포레스트 휘태커, 새라 미셸 겔러, 줄리 델피) 이름이 더 없이 화려하고, 한국 감독이 영화산업이 가장 번창한 곳에서 악전고투 끝에 만들어냈다면 의당 완성도도 걸출해야 마땅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내가 숨 쉬는 공기'는 구조와 주제,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실망스럽다.
시작부터 불길하다. 인물 이름이 플레저, 소로, 해피니스, 러브라니…. 척척박사와 똘똘이, 아름이와 심퉁이가 등장하는 70년대 어린이인형극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이름으로 인물 성격을 '훤히' 드러내는 것은 적어도 예술가가 할 일은 아니다. 제작진은 희로애락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말하지만, 희로애락 아니라 사단칠정에서 끌어댔다고 해도 유치한 것은 유치한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 지쳐 일탈을 꿈꾸는 회사원, 미래를 예측해내는 해결사, 전주(錢主)에게 착취당하는 스타, 사랑하는 연인을 살려내려는 의사. 제작진은 영화가 이 네 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얽어놓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뒤엉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 있다.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하지만 '내가 숨 쉬는 공기'의 네 가지 이야기는 절묘하게 뒤엉키지도 못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그저 등장인물들이 서로 발을 한쪽씩 담그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각각의 이야기가 자체로 흥미로운 것도 아니다.
보도자료는 네 가지 이야기가 '세상에 우연한 만남이란 없다'는 진리를 일깨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포레스트 휘태커가 내던진 돈 가방이 새라 미셸 겔러가 운전하는 차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우연이 아니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꼭 그리 돼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의 결합, 그걸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른다. 빼도 박도 못하는 우연을 그려놓고 '우연한 만남은 없다'고 우겨봐야 허망할 뿐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도 있다. 프레스트 휘태커가 평소 나비를 좋아해 버터플라이라는 말에 판돈을 걸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전의 복선과 나비의 상징성이 어우러져 우연이 필연으로 설득력 있게 승화되는 마법 같은 장면이다. 배우의 연기력이 빛을 뿜는 유일한 장면이기도 하다(출연 배우들의 역량은 의심할 바 없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력은 그저 평범한 수준이다).
고국의 정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려는 감독의 의지는 높이 사고 싶다. 데뷔작에서 옴니버스 형식을 선택한 대담함 또한 평가할 부분이다. 특히 '신인감독과는 일하지 않는다'는 앤디 가르시아를 캐스팅해낸 열정과 저력은 놀랍기까지 하다. 영화 외적으로 가득한 미덕들 때문에, 작품의 부실한 완성도가 더 안타깝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