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과 이연걸 입에서 나온 "어륀지.."

[너 영화? 나 김유준이야!]

김유준   |  2008.04.30 07:52


왕우, 깡따위, 이소룡, 로례, 성룡, 이연걸…. 한 묶음으로 ‘홍콩 무협 스타’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개성은 저마다 다르다. 왕우나 깡따위가 전통 홍콩 무협 영화를 대표한다면 이소룡은 쇼브러더스와 절권도를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독특한 스타다.


성룡은 ‘코믹 쿵푸’라는 전혀 다른 액션으로 침체됐던 홍콩 무협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형도수'는 그 출발점이며 이어 히트한 '취권'은 그 절정이다(우리나라에서는 '취권'이 먼저 히트했다). '프로젝트 A'와 '폴리스 스토리'는 스스로 진화하는 성룡의 위대함을 입증한 작품.

이연걸은 '동방불패'라는 걸작으로 ‘SFX 무협 액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성룡이 애초부터 영화인이었던 데 비해 이연걸은 중국의 정통 무술인 출신이라는 점도 짚어볼 만한 차이다.


합과 합이 어우러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으레 ‘누가 더 셀까?’ 하는 유치한 상상을 하지만, 실제로 스크린에서 이들의 대결을 보기 힘든 것은 이 개성 차이 때문이다. 사자와 호랑이처럼 ‘노는 물’이 다르니 만날 일도 없다.

'포비든 킹덤'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이 불가능한 임무를 해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자본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완성도 면에서는 여러 가지로 아쉽지만, 어찌 됐건 성룡과 이연걸을 한 장면 안에 등장시켰다는 점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홍콩 스타와 할리우드는, 서로가 서로를 갈망했음에도, 그 옛날의 이소룡을 제외하면 지금껏 이렇다 할 합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성룡은 '배틀 크리크'로 진즉부터 할리우드 입성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캐논볼' 같은 영화는 처연하기까지 했다. 최근에 이르러 '러시아워'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어도 특유의 ‘아크로바틱 액션’은 미국산 와이어줄에 묶여 생명을 잃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걸 또한 성룡과 거기서 거기였다. 스타의 몸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할리우드와, 몸을 사리지 않아야 비로소 뭔가를 이뤄내는 홍콩 스타는 애초부터 궁합이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 넘지 못할 벽은 언어다. 성룡 액션은 약간은 촐랑거리는 뉘앙스의 광동어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이야” 하는 익숙한 감탄사와 함께 난처한 표정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놀라운 몸짓이야말로 성룡(과 원표와 홍금보) 액션의 핵심이다. 이연걸은 북경어를 해야 한다. ‘샤오린쓰’ 어쩌고 하며 낮은 목소리로 북경어를 읊조리고서야 비로소 특유의 비장미가 살아난다. 그런 그들 입에서 ‘어륀지’가 흘러나오니 분위기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무협 팬들이 느끼는 “아이 킬 유”와 “워 살러 니” 사이의 거리는, 언어학자가 인식하는 영어와 중국어 사이보다 훨씬 더 멀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무협 팬들에게 '포비든 킹덤'은 아쉬운, 아니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반갑게도 성룡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이연걸은 다시 스님이 되었지만, 둘 사이를 잇는 매개가 소화자도 아니고 천년 공력의 마인(魔人)도 아닌, 미국 꼬마라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대단한 원화평도 이런 배경에서 무협 영웅 본연의 몸짓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아동 취향인 스토리라인 또한 마뜩치 않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적으로 두 사람이 만날 접점이 이 정도인 것을. 게다가 홍콩 스타를 할리우드에 끌어들이려 한 기존 영화와 달리, 할리우드 기술을 중국 무협 세계에서 펼치려 했다는 점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서유기에 취권에 백발마녀에 금연자까지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포비든 킹덤'은 완성도보다는 영화를 둘러싼 의미로 평가해야 할 영화다.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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