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9일 미얀마(구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북한 공작원 강민철이 숨졌다는 소식에 개그맨 심현섭(38)이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심현섭의 아버지는 당시 테러로 순직한 고 심상우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해외순방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사망한 외교사절 17명중 한 명이었다.
심현섭은 21일 기자로부터 강씨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는 "마음이 아프다"며 "그도 남북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의 희생자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불쌍할 따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25년의 세월은 아버지를 잃었던 중학교 1학년의 소년을 그만큼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는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도 테러에 대해 각인된 기억과 상처를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버마, 미얀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깜짝 놀라곤 하죠. 종신형을 선고받은 강씨를 2년전 국내 송환해 진상을 밝히자는 청원이 있었는데, 큰 병을 앓고 있어서 못온 듯 싶어요. KAL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김현희처럼 국내에 와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했죠. 테러 이후 미얀마와 북한의 수교가 단절됐는데 최근 재개 했잖아요."
5남매중 네째인 심현섭은 가족중 가장 먼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게됐다.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전해야했던 순간도 뚜렷이 기억했다.
"당시 10월9일 한글날은 공휴일이라 낮에 집에서 TV로 중계되던 전국체전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괴이한 꿈을 꿔서 깼더니 TV 화면에 향이 피어오르는 근조 그림이 떠있고, 사망자명단이 쭉 올라오는데 거기에 아버지 이름이 있는거에요. 부엌에서는 어머니와 이모가 웃으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죠. 1분간 이 사실을 어떻게 어머니한테 전하나 망설였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1분처럼 느껴졌어요."
아버지가 해외순방을 떠나던 날, 왠지 그러고 싶어 공항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구두를 깨끗이 닦아드렸다. 기뻐하며 웃던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 됐다.
"당시 아버지가 45살, 동행자들과 비해 나이가 많지 않아 남긴 자식들 중 저희가 제일 어린 축이었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1주년이 되던날 갑자기 방송에서 방공의식을 고취시킨다며 그 폭파현장을 또 내보내자, 그것을 보신 어머니는 기절을 하시고... 유가족들을 좀 배려해줬으면 좋았으련만."
이덕화가 전 전대통령으로 분했던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그린 아웅산 사건을 보면서도 유가족으로서 가슴이 찢어졌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현대건설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버마 개발을 위해 버마를 들르자고 주장하는 장면이 나와요. 당초 서남아·대양주 공식 순방 일정에는 버마는 들어있지 않아서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유가족이 볼 때는 그런 사실조차 다 가슴이 아프죠."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 들었던 뒷얘기들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동행했던 고 서석준 부총리의 아들 익호씨와는 지금도 가끔 만난다고 했다.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하나같이 2,3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인재들이었죠. 그 분들이 계셨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훨씬 나아질 수 있었을 텐데요. 사소한 차이로 생사가 엇갈렸어요. 당시 아버지를 부검하셨던 의사가 그러시더라구요. 사고직후 응급실에 실려와서도 2시간이나 심장이 뛰고 있었다고. 아버지가 키는 크지 않으셨지만 유도를 하셔서 몸이 건장하셨거든요."
심현섭은 개인적인 슬픔을 딛고 국가를 위해 순직한 유공자의 자녀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워낙 큰 사건이어서 유가족들도 공인이 됐어요. 택시를 타거나 포장마차에 술을 한잔 하러 가거나 누구의 자제분 아니냐는 얘기를 꼭 듣게 되니까요. 그만큼 행동을 조심하며 살았죠.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배우도 아니고 남에게 웃음을 줘야하는 개그맨이다 보니 애매한 순간이 많았어요.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기사화되는 것이 마냥 부담스럽기만 했죠."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졌기에 아버지를 상기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추모한다. 개그무대를 잠시 떠난 그는 요즘 드라마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SBS '내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등을 제작한 스타맥스의 이사로 재직중이다.
한편 아웅산 폭탄테러를 일으켰던 북한군 특수부대원 3명 중 1명은 도주하다가 사살됐으며 다른 한 명은 체포된 뒤 교수형됐다. 유일한 생존자로 25년간 미얀마의 인세인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온 강민철은 중증의 간질환을 앓았으며 18일 53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