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 따라가는 가수운명?

박종진 기자  |  2008.05.26 19:56


25일 77세로 별세한 원로가수 권혜경 만큼 '가사의 굴레'에 힘겨워했던 가수가 또 있을까.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산장의 여인' 中)


1957년 데뷔곡 '산장의 여인'으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불과 2년 뒤 28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판막증에 걸리고 이후 후두암까지 얻었다. 그 와중에도 '동심초', '물새 우는 해변' 등을 발표하며 병마와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병은 재발을 거듭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고 명문학교를 나와 부러울 것 없던 그에게도 가혹한 '운명'의 벽은 컸다. '산장의 여인' 작사가 반야월 선생을 찾아가 "하필 왜 내게 슬픈 노래를 줬느냐"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가사의 굴레'가 시련이 됐던 가수는 많았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中)던 차중락은 낙엽이 지는 11월에 32살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 中)의 배호는 안타깝게 29살에 요절했다.


애절한 선율의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사랑하기 때문에' 中)를 노래하던 천재 음악가 유재하는 불과 25살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밖에도 돌연사한 가수 김성재는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를 남겼고 '하늘에 편지를 써'('내 눈물 모아' 中)를 부른 서지원은 20살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반면 밝은 노래로 삶의 긍정적 전환을 맞은 가수들도 있었다. '쨍하고 해뜰 날'의 송대관은 문자 그대로 '쨍하고 해 뜬' 삶을 맞았다. 이한철도 2006년 '괜찮아 잘 될꺼야'란 노랫말의 '수퍼스타'를 불러 이름을 알렸다.


노래가사와 운명이 별 상관 없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팬들의 슬픔을 뒤로 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 유니(당시 26)의 히트곡 '콜콜콜'은 활력이 넘치는 노래였다.

뿐만 아니라 노래와 가수가 많아진 요즘 '가사=운명'이란 도식은 이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권혜경도 '가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었을까. 종교에 귀의한 그는 삶의 끝자락까지 전국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위해 봉사해왔다. 위문공연과 강연만도 400여 차례가 넘고 수인들 사이에서는 '어머니'로 불렸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길은 '나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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