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40주년 기념공연. ⓒ송희진 기자 songhj@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음악을 통해 성취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남루한 밑바닥에서의 치열을 맛보지 않고서 정상에 오르는 일은 완벽한 기우다. 요행으로 정상의 자리에 선들 그 성취는 오래가지 못하고 우리에게 늘 뒷전으로 잊혀졌다. 그러한 사실은 지난 가요계를 돌아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시대 가객 조용필이 지난 40년 동안 걸어온 음악적 족적은 역사적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가슴을 울리고 웃게 한 세월과 삶의 무게 같은 것들이다.
적어도 지난 24일 잠실 주경기장에 운집한 5만 관객은 조용필 40주년 기념공연의 의미를 그 연장 선상으로 놓았을 것이다.
그가 열창한 30여곡의 레퍼토리는 모두 당대의 히트곡으로 우리 가슴에 화석처럼 자리한 희열과 멍이었다. 그의 노래는 조용필의 역사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위안 같은 친구였다.
‘꿈’으로 연 공연은 ‘추억속의 재회’로 작별을 고하는 2시간 40분 여 동안 이어졌고 작은 거인 조용필은 한 치의 뒤틀림 없이 객석의 관객들을 유린했다.
순간, 나는 눈앞에 펼쳐진 감격적인 조용필의 오늘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마시던 조용필의 고단한 어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노래 속에서도 화려한 도시를 꿈꾸며 찾아온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이라 했다. 데뷔 이전에서 국민 가수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맞서 싸웠던 춥고도 험한 길을 역행하며 더듬자 이내 눈이 시리다.
지난 40년, 조용필은 노래를 토했고 우리는 조용필을 키워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오늘의 가요가 성찰의 부재고 내일의 가요를 마땅히 걱정하게 된다. 더 우려되는 일은 우리 가요계가 아직도 조용필의 대를 잇는 가수 출현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60분 동안 각혈하는 열창과 전곡의 레퍼토리를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게 하는 뮤지션 탄생의 공백은 너무 길다.
전 세대가 공감하지 못하고 특정 세대들에게 맞춤형으로 곡이 생산되는 현실의 주범을 누구 한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오늘의 가요계는 분명 금이 간 얼굴을 하고 있다.
치열하지 않는 창작이 대중을 감동시킬 수 없고, 감동없는 소리가 대중의 가슴속에 녹아 흐르기는 만무하다. 가요가 아무리 상업적이라 해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사랑받을 수 없다. 그것은 진리다.
춥고도 험한 길을 잊고 산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지, 오늘의 가수들에게 묻는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